수요일, 9월 13, 2023

오늘의 반도체 설계, 20년 전과 다를까?

오늘의 반도체 설계, 20년 전과 다를까?

각종 매체에 '반도체'라는 말이 등장 할 때 따라붙는 접미어를 보면 크게 '물질'과 '공정' 그리고 '설계'일 겁니다. '공정'은 '몇몇 나노 공정' 이라며, 숫자가 작을 수록 최신 공정이라며 뉴스꺼리로 주목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반도체 '물질' 역시 큰 주목을 받는데, 탄소 반도체, 초전도 반도체 등 입니다. 역시 신물질이라며 주목을 받죠. 그런데 '설계'에 관한 기사는 드믈고 그나마 '인력양성' 또는 '시스템 반도체' 라는 기사에 잠깐 언급되는 정도 입니다.

'공정'을 제조기술이라고 한다면 '설계'는 기능의 구현기술 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설계'는 제조와 기능 사이에 연결고리가 되는 도면을 그리는 일입니다. 해야할 일이 많아지면 그 기능들을 수행할 전자회로는 복잡해 집니다. 그저 복잡하다고 표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복잡해 집니다. 요즘 PC에 사용되는 중앙연산장치 반도체(CPU) 내부의 트랜지스터 갯수는 수십억개 라고 합니다[참조].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 반도체를 제조하려면 수십억(!)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도면을 그려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할일이 아니죠. 할 수도 없구요. 그래서 부품들을 모두 규격화 해놓고 수많은 부품을 규칙적으로 배치하고 배선해 주는 반도체 설계 자동화 도구라는 소프트웨어를 동원 합니다.

현대적인 반도체 설계는 할 일을 문서로 작성해 주면 자동화 소프트웨어가 이를 전자회로의 도면으로 변환해 줍니다. 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할일을 작성하고 컴파일러로 실행 파일을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다를바 없습니다. 요즘은 반도체 설계도 소프트웨어 개발 처럼 컴퓨터 언어로 할일을 작성해 주면 컴파일러(합성기와 배치배선기)가 알아서 도면을 작성해 줍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십억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간 반도체 제조 도면을 만들겠습니까!

지지난 달 부터 대학에 나가 반도체 설계를 가르칠 기회가 생겨서 강의록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다가 20년 전의 반도체 설계 강좌 기사를 발견하여 읽어 봤습니다. 연재글 제목도 아주 매력적 입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무작정 따라하기" [링크]

컴퓨터 활용서나 코딩 교육 입문서에 '무작정 따라하기'가 붙은 제목은 봤어도 반도체 설계에 이런 제목이라니 매우 과감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그 시절의 시각에서 보면 어쩌면 황당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적어도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을 염두에 둔 글이긴 하지만 따라하기에 필요한 도구(소프트웨어)들이 너무나 고가 인데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 입니다. 물론 20년 전의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들(컴파일러)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럭저럭(?) 사용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반도체 설계 도구들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도구의 희귀성으로 인해 오늘의 반도체 설계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낳게 된 요인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의 반도체 설계 여건은 20년 전에 비할 수 없이 달라졌습니다. 감히 엄두도 못내던 설계도구들이 제작사들의 관대함 덕분에 무료 라이센스가 발행되고 있습니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뿐만 아니라 반도체 설계도구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뮬레이터, 컴파일러(합성기), 배치배선기, 레이아웃 편집기들은 교육용 뿐만 아니라 중소규모 반도체 설계용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제 말그대로 '무작정 따라하기'에 장애가 없어졌습니다. 이에 덧붙여 국내 기관(ETRI 등), 대학 연구소에 설치된 실험용 공정에서 교육 목적으로 반도체 제작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있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외국의 경우 이미 FPGA 를 사용한 반도체 설계가 취미로 자리하여 재미있는 '프로젝트' 들이 공개되는 것을 봅니다. 반도체 설계를 '무작정' 따라할 만큼 충분한 여건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반도체와 관련된 뉴스의 화면에 방진복을 입은 작업자의 모습을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팬데믹 사태를 격으며 힘들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청정실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감옥에라도 갇혀있는 듣한 모습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숨이 막힙니다. 반도체 업계는 마치 '공정'만 있는 듯이 보입니다. 허옇고 누런 색과 단조로운 기계적인 모습 대신 역동적인 화면(그래봐야 코드 리스팅이지만)과 설계자들의 자유분방한 화면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시뮬레이션 화면의 파형 정도는 보여줘도 되는것 아닌가요? 소프트웨어 산업을 소개할 때처럼 남녀 설계자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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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덧붙이자면,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반도체 설계'는 규모만 커졌지 기조는 바뀐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설계'는 하드웨어용 언어로 작성된 할일(알고리즘)을 디지털 회로(트랜지스터 조합)로 변환해주는 과정을 말합니다. 오늘날 이런류의 '설계자동화'는 관심을 얻지 못합니다.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마치 소프트웨어 언어의 컴파일러 제작이 고급 기술이 아닌 평범해 진것과 같은 이유 입니다. '하드웨어 문서에서 실리콘으로' 이어주던 자동화 기술이 정점에 이른 지금은 좀더 높은 수준의 자동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 문서'에서 '하드웨어' 라는 말을 빼려는 것입니다. 하드웨어를 목적으로 만든 문서를 전자회로로 바꾸는 설계 자동화는 평범해진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가깝도록 발전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언어는 알고리즘을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언어를 이용해 전자회로에게 일을 시키고 있죠.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된 알고리즘을 전자회로에서 작동시키려면 컴파일러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이 도구는 범용 계산기(CPU, GPU 같은)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일반 문서를 기계용 문서로 바꿔 주는 역활을 합니다. 문제는 이 범용 계산기의 성능(처리속도)이 인공지능이나 기계학습처럼 대규모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응용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시다발로 생성되는 데이터를 받아들이려면 그 숫자만큼의 컴퓨터가 필요한데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산기에서 '범용'을 빼려고 합니다.

신경망이라고 하는 인간의 사고체계를 모형화하고 전자회로로 구현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인간두뇌의 신경세포의 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천(또는 수만개)개의 CPU가 서로 연결된 계산기를 만들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런 계산구조의 유용성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범용 CPU가 하나 달린 컴퓨터 여러개를 연결하려면 여간 수고로운게 아닙니다. 그래서 수천개의 CPU를 가진 컴퓨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다행이라면 신경망을 구성하는 계산기(신경세포)가 이것저것 다하는 범용 계산장치(CPU)보다 아주 단순하다는 것이죠. 손톱만한 반도체 위에 단순 계산장치 수천개를 서로 연결해 놓고자 합니다.

응용에 따라 알고리즘은 달라 집니다. 이 알고리즘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쉽게 작성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된 알고리즘을 반도체 회로로 바꿔주는 자동화 도구가 등장 했는데 이를 고위합성(HLS, High-Level Synthesis)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계산을 수행하는 전자회로는 '하드웨어' 입니다. 이 하드웨어는 한번 만들어지면 고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컴퓨터는 다재다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범용 CPU를 두고 프로그램을 바꿔가며 해당기능을 수행 합니다. 이를 '소프트웨어'라고 합니다.

FPGA 라는 반도체 부품(IC)가 있습니다. 이 반도체는 논리적인 수준에서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전자회로의 말단에 해당하는 트랜지스터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보다 윗단계에서 산술논리 계산을 수행하는 계산기 구조를 마음대로 재구성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특정 알고리즘에 맞춰 그에 최적화된 CPU로 변신 시킬 수 있는 반도체 부품이 바로 FPGA 라는 것입니다. 프로그램될 수 있는 하드웨어 입니다. 하드웨어가 소프트 해졌다는 뜻입니다.

HLS와 FPGA를 결합하여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소프트해진 하드웨어에서 작동 시키고자 하는 연구가 한창이고 곧 실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20년전에 반도체 설계라 하면 '하드웨어용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 였다면 오늘의 반도체 설계는 '하드웨어용'이라는 제약을 떼내고 '일반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로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재작년(2021)에 Xilinx의 HLS 툴이 신통하길래 봐뒀는데 이렇게 유용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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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덧붙임,

eFabless는 MPW, 웨이퍼 한장에 여러개의 칩(프로젝트)의 제작을 지원해 주는 서비스 업체 입니다. 여러 반도체 공정을 두고 있는데 반도체 제작 복덕방 쯤 되는 곳입니다.

https://efabless.com/

이곳에서 ChipIgnite 서비스 광고를 봤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군요.

https://efabless.com/chipignite-for-academia

학술(교육) 목적의 칩제작

- 오픈 소스 EDA 툴과 PDK(구글의 SkyWater)
- 내장 RISC-V, 패드 제외한 순수 사용자 설계영역 10mm^2 (3000x3000um)
- I/O 38 개
- 칩 제작 뿐만 아니라 패키지, 테스트, 응용 보드제작 까지 지원
- 칩 설계 전과정 교육 지원
- 고등학교(!)에서 대학원 까지 수준에 맞춘 설계 수업과 온라인 교육
- 칩 당 제작비 $1800

'고등학교' 라고 명시된 것을 보면 그런 수요가 있어서 그렇겠지요. 하기야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큐브위성을 올려주는 NASA의 ELaNa 프로그램을 보면 저들의 환경이 그저 부럽습니다.

Project ELaNa: Launching Education into Space
https://www.nasa.gov/content/about-el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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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AI_accelerator, https://en.wikipedia.org/wiki/AI_accelerator
[2] Xilinx Research & Open Source Projects, https://www.youtube.com/@xilinxresearchopensourcepr321
[3] HLS Programming with FPGAs, https://www.youtube.com/@youngkyuchoi4260
[4] FINN tutorial at FPGA'21, https://xilinx.github.io/finn/2021/01/27/finn-tutorial-fpga21.html
[5] 고위합성 튜토리얼 개요 (Tutorial Description), https://hls-goodkook.blogspot.com/2021/08/1-tutorial-descrip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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