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2월 03, 2023

[양평집] 2023년 11월, 환갑!

[양평집] 2023년 11월, 환갑!

육십년전 십일월 어느 날 강원도 철원 땅에 눈이 엄청 내렸다 합니다. 그후 갑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겨우 한바퀴 돌았을 뿐이죠. 다시 한 발을 내딛으라는 뜻인지 올해는 이런 저런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생겼네요. 곧 다가올 연말에 짚어 보렵니다. 아직 한달이나 남았으니까.

 

삼촌 생일이라며 조카가 치즈 케익을 보내왔습니다. 달달한 케익을 먹으며 마음이 짠 하네요. 아기때 기저귀도 갈아 줬던 녀석이 이제 그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요. 아이만 크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제 머리카락도 희었네요. 지난달에 만든 "꼬꼬네 잼"을 조카들에게 나눠 주고는 '최고 삼촌'의 칭호를 받았구요.

 

짧았던 가을을 보내며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로 김장을 담금니다. 절이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기에 매번 내년에는 절임배추를 사다 담그마 했다가도 배추 자라는 모습이 그리워(?) 모종을 심게 되는 군요. 한 십여 포기 담갔습니다.

 

김장을 한 날은 역시 수육에 막걸리가 진리죠. 지평 막걸리가 유명세를 타다가 지금은 춘천막걸리가 된지 오래 됐죠. 그대신 동네 막걸리를 마십니다. 지평에 있는 양조장인데 막걸리 장인이 운영한다고 하네요. 생일 아침에는 미역국도 먹었습니다.

  

누님이 보내주신 토마토에 모짜렐라 치즈를 얹어 구운 카프레제. 텃밭의 산물이 마감 되었으니 이제 서울의 큰 농산물 시장 옆에 사는 누이가 시골사는 동생에게 종종 농산물을 보내 줍니다. 이곳은 기온이 낮아 감나무는 겨우내 얼어 죽거나 감이 제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서울 사는 누이가 대봉감을 보내 주어서 호랑이도 즐긴다는 곶감을 만듭니다. 

달달한 가을 당근으로 당근 케잌을 만든 김에 사과 케익도 만들었습니다. 시골살이의 단점이 군것질거리 배달이 어렵지만 종종 여느 빵집 부럽지 않은 건강한 빵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죠. 

 

마당에 올해의 막바지 꽃들이 피었습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정원을 빛내주는 용담과 한여름 부터 초겨울까지 화려한 바늘꽃입니다.

 

잎이 진 화단을 정리하고 내년 봄을 기약하며 수선화, 튤립, 알리움 등 구근류들도 심어 주고 고양이들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철망을 덮어 줍니다.

 

양평은 역시 노란 은행나무죠.  여름내 그늘을 제공해 주던 느티나무 잎이 다 지면 모아 두었다가 마늘 밭과 정원의 추위에 약한 화초들을 덮는 보온재로 씁니다. 

 

초겨울 강풍이 휩쓸고 간 마당 풍경은 어쩐지 을씨년스럽지만 하늘은 맑고 푸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돗가에 고드름이 달리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첫 눈이 내렸습니다. 이제 겨울입니다. 마당냥이들에게 겨울 집을 마련해 주었구요.

 

소파에서 느긋하게 주무시는 요녀석들은 거실냥이 꼬리와 꼬북이 입니다. 꼬리 녀석이 어쩌다 목에 상처가 났는데 곪아서 병원 치료를 다녀 왔네요. 집 나갔던 고등어도 뒷다리를 절룩이며 돌아왔네요. 마당으로 숲으로 뛰어다니는 시골 애완동물들은 전혀 예기치 못하게 다치곤 합니다. 처남네 강아지 '코코'를 보니 귀여운 생각에 마음이 동하지만 참아야 겠지요. 말 못하는 짐승일 망정 들이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한 해의 막바지라는 허전함과 환갑이라는 당혹감,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십일월 이었습니다.


일요일, 11월 12, 2023

[양평집] 2023년 10월, 가을이 어디로 갔지?

[양평집] 2023년 10월, 가을이 어디로 갔지?

어쩌다 선생 노릇 하느라 가을이 간줄 몰랐습니다. 학생들에게 반도체 설계를 가르치면서 제작까지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더랬습니다. 사실 반도체 제작까지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상용 제품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므로 그리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은 반도체 설계도 오픈 소스 추세에 설계용 소프트웨어들도 공개되어 있더군요.

관련글: 오늘의 반도체 설계, 20년 전과 다를까? [링크]

국립 연구소(ETRI)와 대학(ISRC, DGIST)에 소재한 반도체 공정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반도체 설계물을 제작해 준다기에 신청했습니다.

관련글: "내칩(My Chip) 제작 서비스" MPW 참가 독려 [링크]

문제는 풀 커스텀 방식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오픈-소스 설계도구인 합성기(Yosys/RTL Synthesizer)와 자동배치(GrayWolf/Auto-Placer) 및 배선기(QRouter/Auto-Router)를 시험해 보고 싶은데 표준 셀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말인 즉슨, 반도체 설계 과정의 최상위 과정에서 맨 밑바닥까지, 게다가 오픈 소스 도구들을 사용해서 설계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홀로 세운 계획입니다. 누가 시켜서 했다던가 과제를 맡았다면 거절 했을 겁니다. 시골사는 촌부에게 반도체 제작기회를 준다니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을 해준다는 측과 논의 하면서 다소 무리한 요청을 하며 이런저런 의욕을 보였더니 반가워 하네요. 우연히 맡은 '대학교수' 직함의 위력이 이런 거구나 합니다. 만일 촌부의 부탁이었다면 콧방귀도 안뀌었겠지요.

  

  

도면을 그리고 이를 반도체 설계 자동화 도구들에 연동되는 표준 셀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실험실 반도체 공정이라 제약도 상당한데다 오픈 소스 도구들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요. 그러느라 가을이 가는줄도 몰랐네요. 다시는 철야 안할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두어번 밤을 새기도 했구요.

그렇다고 아예 가을을 지나친 것은 아니구요. 어느 화창한 날엔 꽃을 꼽고 가을 들판에 나가기도 했구요. 단호박 식혜와 밤을 주워다 약식도 해먹었습니다.

 

그러다 브라우니를 만들다 실패해서 초코 부침개가 되기도 했지만 초코칩 쿠키는 그럴듯 합니다.

 

봄에 마당에서 따서 냉동고에 두었던 딸기, 블루베리, 블랙 커런트를 꺼내 잼을 만들어 두었구요. 조카들에게 한병씩 나눠줄 요량입니다.

 

날씨가 선선해 지니 여름 더위에 멀리했던 불기를 찾아 요리를 시작 합니다. 그래봐야 등갈비 묵은지 찜이나 배추전골 정도지요. 갖가지 야채를 넣은 파스타는 저의 시그니처가 되었기에 두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마당은 가을을 맞아 구절초와 국화류가 가득 입니다. 국화 향기에 취해 밤샘의 피로가 가시는 군요. 올해 환갑을 맞이 했습니다만 연일 밤샘에도 끄덕 없습니다.

  

  

  

몇일 쌀쌀해 지더니 마침내 서리가 하얗게 내렸습니다.

 

요녀석들은 어디서 뒹굴다 들어왔는지 턱밑이 시커매져서 들어와서는 팔자좋게 주무십니다.

 

풀씨를 잔뜩 뭍히고 와서는 간식달라며....

 

매월 월말이면 쓰던 월기를 중순이 다되서야 부랴부랴 쓰는군요. 그렇게 가을이 가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