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9월 02, 2023

[양평집] 2023년 8월, 수박 농사꾼 칭호를 받다.

[양평집] 2023년 8월, 수박 농사꾼 칭호를 받다.

지난달에 이어 "징글징글"하게 덥더니 월말에 아침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 합니다. 더위가 수그러 진다는 처서(8월 23일)를 지나자 마자 신기하게도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돕니다. 

조카 손자가 첫돌을 맞았습니다. 코로나다 뭐다 해서 그동안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보다가 조카네 방문하여 손자를 안아봤는데 묵직 하네요. 낯을 가린다는데 삼촌 할아버지에게 방긋 웃으며 무릎이며 등을 기어 오르니 감동입니다. 가구를 잡고 걸으라고 안달 하길래 돌 지나면 선다더라 했더니 정말 돌을 지나자 마자 제 혼자 걸음을 떼더군요.

그날이 그날이라고 하지만 하루 사이에 변하는 기온,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매일이 같은 날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을 맞이 할때 마다 같은 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소소한 사건을 만들곤 합니다. 오늘은 또 뭘했나 싶어 일기삼아 달력에 짧은 표시도 남기고 매월 이렇게 월기 쓸 꺼리를 만들죠.

날씨가 더우니 한낮의 마을 길에 인적은 없고 에어콘 소리만 요란 합니다. 예전에 부잣집에나 있던 에어콘, 전깃세 무섭다며 있어도 틀지 못하던 그 가전기기는 이젠 없으면 못살게 됐군요. 특히 시골집은 지면과 가까워서 습기가 많이 올라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네요. 전깃세 걱정보다 살아야겠기에 종일 트는 날도 있네요. 전깃세가 십오만원을 훌쩍 넘깁니다.

장마가 지났다지만 몇일 걸러 비가 내리고 또 해가 나오면 마당 잔디며 풀이 쑥쑥 올라오니 예초기로 베어 냅니다. 더운날 풀베기가 만만치 않아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죠. 텃밭 한귀퉁이에  수박 넝쿨이 잡초들 사이로 한창 뻗어 있는데 풀을 베다 횡재를 하죠. 작은 수박을 발견합니다. 아마 며칠 더 놔뒀더라면 물러졌을 텐데 제때 수확 했습니다. 올해는 수박이 제법 달려서 서울사는 누이들에게 한통 나눠 줬더니 맛있다며 "수박 농사꾼" 칭호를 받았습니다.

 

가지와 호박을 볶아 루꼴라 파스타를 해먹습니다. 부추와 감자를 갈아 반죽한 수제비도 해먹습니다.  늘 하는 자랑입니다만 텃밭 산물의 채소향이 아주 좋습니다. 애호박, 가지, 고추 등은 동물병원에 갈때 나눔도 하고 이웃에게도 나눠드립니다. 받기만 하던 것들을 올해 처음 나눔을 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텃밭에서 난 가지, 호박, 고추는 겨울에 반찬꺼리가 되길 바라며 여름 땡볕에 말리구요,

 

토마토, 오이, 호박, 가지, 고추로 풍성 했던 텃밭은 장마를 맞아 서서히 물러지기 시작 합니다. 어느새 가을 기운이 드니 김장 배추 모종 시장이 열리고 우리 텃밭에도 배추모종이 자리 했습니다. 김장 무도 파종 했구요.

 

김장을 대비할 때가 됐다니 올해도 후반으로 접어 들었고 내 나이도 환갑을 넘기는군요. 강의 중에 학생들이 반도체 설계를 어려워 하길래 젊음이 부럽다, 도전해 보라고 부추기며 나는 올해 환갑 이라고 했더니 눈이 동그래 지더군요.

정보통신과학기술부 주관으로 칩을 만들어 준다는 공모에 학생들을 부추겨 몇건 제작 신청을 냈습니다. 그중 하나로 6502라는 CPU를 신청 했는데 선정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CPU는 80년대 초반 개인형 컴퓨터의 서막을 열었던 APPLE II라는 컴퓨터에 채택 되었었습니다. 1975년에 모토롤라의 기술자들이 나와서 설립한 MOS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에서 설계하고 그후 여러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 되었습니다. 약 3천여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되었는데 손으로 일일이 그렸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관련글] 6502 CPU 복원, 80년대 학번 아재들의 추억 되살리기 [링크]

MPW에 공모된 내용으로는 칩 크기가 너무 작아서 CPU를 넣으려면 크기를 늘려야 합니다. 공정을 해준다는 기관을 방문하여 떼를 써본다고 대전까지 출장을 다녀 왔습니다. 적어도 소규모 CPU 정도는 해줘야 학생들도 흥미가 생기고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에 도움이 될거라고 강변을 했더니 고려해 보겠다는군요. 대학의 '교수'라는 직책이 아니었더라면 턱도 없었겠지요. 이 직위의 호사를 누리는 만큼 학생들을 힘껏 가르쳐 보렵니다.

[관련글] 2023년 8월 주간 강좌 및 주간 세미나 결과 보고 [링크]

재작년 한창 장맛비가 심하던 날 마당 한켠에서 태어났던 '고등어'의 두살 생일을 맞이해 참치 캔과 과자로 파티를 해줬습니다. 어미가 세마리를 낳았는데 두마리는 비를 맞고 살지 못했고 요녀석을 온실 안으로 옮겨 줬었는데 다행히 어미가 잘 보살펴서 살아 났더랬습니다. 어미 덜룩이는 올봄 사료를 먹고 나가서는 아직 안돌아 오는걸 보면 어디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넛나 봅니다. 가끔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동물이 난 자리도 큰가 봅니다.

  

눈을 뜨자마자 간식 달라고 조르는 꼬리와 꼬북이. 모른체 했더니 매달립니다. 그나저나 저 등짝은 뉴규?

 

한창 더울땐 조금이라도 시원한 방바닥에 널부러 지던 녀석들이 바닥이 차다며 냉큼 소파위로 오릅니다.

  

여름의 마당은 좀 한산 하네요. 목수국, 배롱나무, 플록스, 숙근 버베너, 달맞이꽃과 바늘꽃이 여름의 한가운데서 피어있습니다.

 

같은 달에 보름달이 두번 뜨면 블루문 이라고 한다지요. 말일에 슈퍼블루문이 떠서 마당에 나가 한참 올려다 봤습니다. 7년전 봄에도 블루문이 떴었더랬지요. 그때는 기쁘고 들뜨며 바라 봤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소망을 담아 봅니다.

아마 도시에 살았더라면 블루문이고 뭐고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이 또한 시골살이의 낭만 중 하나입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 나네요. "요즘은 낭만이 없어."



댓글 3개:

  1. 수박농사꾼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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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난히 무더웠던 8월 알차게 보내셨네요^^ 정원에 꽃들이 아주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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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더위를 용케 잘 피해서 멋지게 사는 동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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