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9월 30, 2021

양평집 2021년 9월, 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지냈다

 양평집 2021년 9월, 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지냈다

한낮의 기온은 여름인듯 뜨겁기도 하지만 저녁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걸 봐선 가을에 들어 섰나 봅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몇차례 내리더니 마당 수은주가 12도까지 떨어지네요. 해마다 마당을 나는 반딧불이를 심심치 않게 봤는데 올해는 딱 두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봤을 뿐입니다. 동네에 사람이 많이 늘어난 탓이겠지요. 뭐니뭐니 해도 우리가 터잡고 살고 있으니 서운해도 할말은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인천에 있는 사무실에 나갑니다. 일하러 간다기 보다 예전에 하던 일들이 사후 서비스 할일이 있나 싶어 가보는 거죠. 아주 드물게 출장 가는 일이 있구요. 근무할 때 마지막 팔았던 물건의 A/S 기간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부분 알아서들 처리 합니다만 기술적인 문제가 있으면 동행합니다. 점심을 먹게 되는데 빕스, 애슐리 같은 뷔페 식당에 가는게 보통 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맛집 이라며 보리밥집 이라던가 청국장집, 두부전골집에도 갑니다. 도시 사람들이야 그게 별미 일지도 모르겠지만 모처럼 나들이 나간 촌사람에겐 김빠지는 일이죠. 도시 냄새나는 레스토랑이 좋은데 서울 사람들은 그걸 모르나 봐요. 촌에서 왔다고 고깃집에 데려가 줘도 반갑지 않습니다. 차라리 치킨집, 패스트 푸드 햄버거가 반갑지요. 시골 산다고 고기도 못먹는 줄 아나본데 귀촌하고 가장 향상된 생활 부문이라면 단연 식생활 입니다. 삼시세끼 꼬박 손수 챙겨먹는 탓에 요리 실력도 늘었지요. 달걀 토스트와 신선한 야채로 시작해서 돼지고기 안심 스테이크 쯤은 일도 아니게 됐습니다. 뭘 해먹을까 생각하며 하나로 마트 식품 코너 앞을 서성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올해는 밤과 대추가 여물기 전에 추석을 맞이해서 밤, 대추를 사다가 추석 차례를 지냈습니다. 차례상 예법은 모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좀 더 사셨더라면 전원 생활을 참 좋아 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아련 했네요.

아침 저녁으로 산책가기 좋을 만큼 선선 합니다. 동네 옆으로 차들이 다니지 않는 막다른 길이 놓여있습니다. 풀이 무성한데 그사이로 가을 꽃들이 예쁘게 줄지어 피었습니다. 가끔 임도로 올라가는 소로가 나있어서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산에 밤나무가 있어서 밤송이가 꽤 떨어져 있는데 부지런한 이웃들이 벌써 다 주워 갔나봅니다. 빈 밤송이만 딩구는 군요. 동네에 빈땅이 점점 줄어들고 방문이웃이 늘어나서 밤 주우러 가는 길을 막으니 밤 줍기도 수월치 않네요. 산에 인접한 땅 주인들은 국유림을 마치 자기네 소유인냥 행세를 하니 얄밉습니다. 주말에 왔다가면서 망부터 치는데 거주자 우선권은 바라지도 않지만 못들어가게 하면 서운 하죠. 여름에 마을입구에 벌초며 겨울엔 제설을 가끔씩이나마 하는 건 거주자들인데요. 재작년엔 꽤 주워다가 밤조림을 했더랬는데 좀더 눈에 불을 켜고 주워볼까 합니다.

선녀벌레가 극성입니다. 보이는대로 가지를 치고 방제도 해보지만 당할 수가 없군요. 살충제를 무작정 쓸 수 없어서 나방이 끈끈이를 붙였습니다. 영국 제품인데 가드닝이 발달한 나라에서 온 제품이라 그런지 성능이 상당히 좋습니다. 비를 맞아도 끈적임이 남아 있어서 좋습니다. 작년에도 붙였었는데 상당한 효과를 봤었습니다. 

 

김장 배추와 무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쪽파와 갓도 제법 싹이 올라왔습니다.

 

이웃에서 고구마를 수확 했다며 나눠 주셨는데 크기가 어마무시 하네요.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경작하시는 모습을 봤기에 나눠주시는 농작물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월말들어 대추가 익어 가네요. 땅에 떨어진 걸 한입 베어 물었더니만 어찌나 단지 깜짝 놀랐습니다. 별로 신경써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달아도 되는걸까요? 요즘 과일들이 무척 단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몇해전 식재한 배나무에서 모처럼 먹음직스러운 배가 두어개 달렸길래 애지중지 하며 살폈더만 맛이 들자마자 새들의 공격을 받았네요. 파먹힌 자리에서 배즙의 단내가 펄펄 나니 더 골이 나더군요. 야무지게 파먹은 것을 봐선 큰 새들이 쪼아 먹나 봅니다. 꽤나 두터운 봉지를 씌우던데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내년에는 튼튼한 봉지를 씌워야 겠습니다. 

화초들도 슬슬 씨앗을 맷기 시작 합니다.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사초 키가 늘씬 하네요. 보라색으로 예쁜 좀 작살나무의 열매가 맛도 없던데 새들이 좋아하더군요. 

 

길가의 야생화 들도 씨앗을 맷고 있습니다.

 

이 포도같이 생긴 열매의 정체가 궁금해 집니다.  

아스타와 큰 꿩의 비름 그리고 분홍 구절초 꽃이 화려 합니다. 가을 꽃들이 봄꽃보다 화려한것 같아요.

 

이제 화사하게 피어날 국화, 그리고 김장께 피던 용담이 벌써 활짝 피었습니다.

 

올 봄에 어미가 데리고 들어온 아깽이들이 마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은 못대게 합니다만 지들이 기분 좋으면 아예 개냥이가 된 듯이 바짓 가랭이를 부비부비 하네요. 암수 두마리인데 사이가 얼마나 애틋한지 모릅니다. 그러다가도 싸울땐 냥펀치 휘두르기가 격투기 저리가라 입니다. 겨울을 준비하는지 살이 부쩍 오르고 있군요. 가끔 새 사냥도 하는데 맹수의 풍모가 나옵니다.

EBS 교육 방송을 가끔씩 봅니다. '100세의 쇼크', 장수는 축복일까 불행 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더군요. 노년이라도 '인정욕구'는 여전 하답니다. 겉으로는 아닌척 해도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여전 하다네요. 노후를 준비 한다면 대개 경제적인 면을 먼저 떠올리는데 늙어도 여전히 사람임을 증명 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No인' 이 되면 무척 서운 할 것 같아요. 놓고 싶지 않은 취미로 영문독서, 별보기, 수학문제풀기, 프로그래밍으로 정했습니다. HLS(High-Level Synthesis)를 아는지요? 반도체 설계 기법인데 젊은 청춘을 바쳤던 공학분야 입니다. 그당시 너무 초창기여서 관심을 못받던 분야인데 최근에 상당히 성숙되어 가나 봅니다. 지난달부터 10여년 전에 손을 놓았던 것을 다시 되살리느라 밤샘까지 하는 중입니다. 하나씩 되살릴 때마다 희열이 솟네요. 특히 그때 안되던 것들이나 툴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서로만 읽던 것들이 지금은 무료로 풀려 나와서 마치 오랜 한을 푸는 기분입니다. 올해 내내 매달려 볼 생각 입니다.

벌써 올해도 8할이 넘어가네요. 앞으로 살 날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가을과 함께 깊어집니다.


금요일, 9월 03, 2021

양평집 2021년 8월, 망설이는 사람들

양평집 2021년 8월, 망설이는 사람들

8월의 한 낮은 여름의 본맛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연일 35도를 육박했고 연일 열대야에 잠들기 어렵게 했습니다. 하순께 태풍 영향을 받아 연일 비가 내렸구요. 어쩐지 지난달 장마가 싱겁게 지나갔다 싶었습니다. 에어컨을 하루 열시간 이상 틀어 댔더니 전기 검침원이 이번달에는 많이 썼다고 하시네요. 지난 달에도 만만치 않게 전기료가 5만원 가까이 나왔는데 이번달에는 두배쯤 나오려나 봅니다. 도시 아파트 생활을 되짚어 보면 에어컨 튼 날이 일주일 남짓 했던 것을 보면 확실히 땅딛고 사는 생활에 전기를 많이 쓰네요. 기온도 그렇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과 습기 탓 이겠지요. 벌레에 별로 신경을 안쓰다가 나방, 모기 같은 해충들이 귀찮기도 하구요. 시골 살이가 좋은 것 만은 아니죠.

코로나-19 재택근무에 지친 탓인지 야외로 나왔다가 시골살이에 관심을 갖게된 사람들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초 까지만 해도 물어보거나 찾아오는 지인들이 여럿 됐었습니다. 그땐 나도 초짜면서 시골 살이의 장점을 침이 마를세라 열변을 토했더랬습니다. 요즘도 그 때 그분들이 종종 물어 오곤합니다. 다른 점 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고 물어 온다는 겁니다. 방송이나 유튜브에 시골살이에 대한 아주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 일 겁니다. 특히 단점 이야기에 조회수가 엄청 올라 가더군요. 아마도 망설이는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여 질 땐 안사는 게 현명 하다지요. 귀촌도 망설여지면 안 오는게 좋다고 말해 줍니다.

솔직히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전기료와 난방비 많이 들어간다. 단열 잘된 집 찾기도 어렵고 짓기는 더욱 어렵다. 계곡물이 흐르고 그늘진 시원한 마당에 나서면 멋진 풍광을 맞이 할 수 있는 그런곳 남아 있지 않다. 설사 운좋게 그런 곳에 살게 됐더라도 일년 내내 좋기만 하겠냐? 땀을 비오듯 흘려야 그나마 푸성귀라도 뜯어 먹는다. 그러고 나면 마당에서 고기굽고 뭐하고 그런거 없다. 힘들고 치울일 걱정되서 일년에 몇번도 안한다. 방송에 목가적인 화면이 나오면 저 사람들 뭐먹고 사나 싶은 생각이 앞선다. 겉으로는 말을 안해도 시골살이는 할일도 없고 정말 심심하다. 이렇게 말해주면 대개 되돌아 오는 답은 이렇습니다. "나도 다 알아 봤어." 라며 언성을 높이기 마련이죠. 아마도 미련이 남아있는데 말리니까 자존심도 상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나름 계획이 있다며 굳은 의지를 표명합니다. 근데 왜 물어 볼까요? 시골살이 갔다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다 피하고 세웠다는 계획을 들어 보면 황당합니다. 마당에 공구리 치고 밭일 안하고 유람이나 다닐라면 뭐하러 시골에 와? 그냥 도시 녹지 조성 잘된 아파트로 가라고 해줍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사회수준이 높아져서 병원도 가깝고 백화점, 문화시설에  근린 공원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그런데 너는 왜 시골에 살지?" 그러면 떠나고 싶은데 시골 땅은 싸게 내놔도 안팔려서 별수 없노라며 회심의 일격(?)을 날려 줍니다. 이렇게 비참(?)했던 8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겨우 모종 몇 줄기 심었더니 감당할 수 없게 열리지 뭡니까. 대충 풀만 뽑아줬는데 다행히 비도 제때 내리고 햇볕이 좋았던지 채소가 제법 달렸군요.

시골에 오면 남녀 유별은 개나 줘버려야 합니다. 밥때 마다 어디 나가서 사먹을 수 없으니 불쌍하게도 남자도 요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행히 유튜브 요리 채널이 살려 줍니다. 백종원씨 덕에 늙으면 곰탕 끓이는 마누라 무섭지 않죠. 나갈테면 나가라지 하며 그깟 밥 쯤이야!

가지 밥을 해봤습니다. 계란 후라이는 일도 아니죠.

 

아직도 남아 있는 가지는 볶기도하고, 토마토와 치즈 그리고 직접 구운 쿠키로 때우는 아침. 시골에 오니 얼마나 심심했던지 요리에 제빵 까지 하고 앉았네요.

  

시원찮은 농사라 토마토가 죄 터졌길래 스튜로 해 먹습니다. 이것 저것 남은 푸성귀에 계란지단을 얹은 비빔밥. 누가 그러던가요? 계란지단 어렵다고?

  

몇일 비가 오고 났더니 토마토 줄기가 녹아 버렸습니다. 그 대신 포도가 주렁~

 

한때 인기를 끌더니 지금은 따가래도 안따 간다는 아로니아,

 

빨간 고추를 따긴 했는데 저걸로 김장을 담그기엔 턱도 없겠지요. 그래도 배추는 야무지게 심어 봤습니다. 겨우 열댓평 되는 밭을 갈려고 해도 허리가 아프죠. 이럴라고 시골 왔나 싶을땐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작은 관리기지만 스무평 농사에는 아주 유용합니다.

 

장마비에 화단은 엉망이고 풀만 무성하네요. 이걸 언제 다 뽑나 싶다가도...

 

사이사이 핀 수국과 메리골드를 보며 힘을 내 봅니다.

 

조만간 필 큰꿩의비름과 구절초며 국화를 기대하구요.

 

너무나 심심하여 방송대 4과목, K-MOOC 3과목, Coursera 2과목 그리고 마져 읽어야 하는 The Great Gatsby, 옛추억 되살려 High-Level Synthesis 까지 손을 대놨는데 욕심이 과한것은 아닐지요.

마당에 반딧불이 한두마리 날아 오르고 비갠 청명한 하늘입니다. 천고마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코앞입니다. 망설이며 물어보던 자기님들은 울고 싶은데 뺨때려 줬다는 격으로 망설이던 참에 잘 말려줬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