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19, 2023

[영어공부] 혁신적인 알츠하이머 마을

[영어공부] 혁신적인 알츠하이머 마을

A French Village’s Radical Vision of a Good Life with Alzheimer’s | The New Yorker

2022년 11월 23일 더 뉴요커(The Newyorker) 웹에 실린 기사 [링크]

Every resident of the Village Landais has dementia—and the autonomy to spend each day however they please.

By Marion Renault

랜데이즈(Landais, 불어로 '랑데'(?)) 마을의 모든 거주자들은 치매(dementia)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상을 스스로(anatomy) 보내고 있지만 아주 행복해한다.

마리온 르노 씀

[치매 할머니를 둔 필자가 외부 도움 없이도 자율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프랑스의 한 치매환자 마을을 방문 하면서 치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치매를 두려워 할까? 사회와 격리가 최선인가? 누구를 위한 격리인가? 위험을 막아 본다며 격리하기 보다 "새로 시작하는 삶"으로 사회에 적응 시켜보자는 연구도 있다고 한다. 확실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서도 치매 치료제 개발에 쏟아 붙는 엄청 난 비용의 일부라도 치매 환자의 사회적 정신적 돌봄에 쓰이면 좋겠다. 지난 여름 할머니를 방문하면서 "제가 누구예요?" 하고 물었더니 한참 생각하다 "막내 동생이지" 그녀가 필자를 막내동생이라고 한 것은 곁에 앉아 감자도 까고 요리도 같이 하고 함께하기 편한 사람으로 막내 동생을 떠올렸을 뿐이다. 막내 여동생이든 손녀든 할머니의 마음에 병이 든 것이 아니다. 중간중간 의학용어들, 철학적 문장, 싯구까지 등장하지만 몰라도 내용파악에 지장 없다. 그나저나 더 뉴요커 기사들은 너무 길다. 하지만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전문을 옮겨본다.]

Four years ago, I spent a morning cooking couscous with my grandmother Denise near Grenoble, France, where she has lived most of her life. We peeled carrots and turnips, seared lamb and chicken, tied bouquets of herbs, and mixed hot water into the grains with our bare hands. I wrote down her recipe as we went along. My mamie has Alzheimer’s, and I had to learn to make her couscous on my own, before she forgot how to do it herself. That day, I recorded a video of her on my phone. She was sitting in a familiar kind of wooden IKEA chair that you have probably sat on before and that I will always associate with her. As she gazed out the window, a thought occurred to her, and she turned to me and asked, "C’est samedi que tu pars?" You're leaving on Saturday?

4년전 나는 할머니 데니스가 일생을 보내셨던 프랑스 그레노블에서 쿠우쿠스를 요리하며 아침을 보냈다. 맨손으로 당근과 순무를 손질하고 양고기와 닭고기 양념을 했고 허브 다발을 묶었고 곡물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요리를 하며 그녀의 요리법을 받아 적었다. 내 할머니(mamie, 필자는 할머니를 이렇게 부르나 보다)는 알츠하이머에 걸렸기에 그녀가 잊어버리기 전에 그녀의 쿠우쿠스 요리법을 알아서 배워둬야 했다. 그날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남겨뒀다. 그녀는 흔한 이케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의자였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를 그런 의자다. 그녀가 창밖을 응시하며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 보다. 내게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었다. "쎄싸메 꿰 뚜빠?" 토요일에 갈 거니?

Yes, I told her. I was returning to the United States, where my parents moved our family when I was eighteen months old. I found it painful to leave; each time we visited France, the progression of her disease seemed to become more unignorable. Her pencil trembled when she practiced her handwriting. She moved her daily baguette from the kitchen counter into the plate drawer. Late at night, she muttered and puttered around her apartment. When her wandering inconvenienced us, we guided her back to her chair. My family talked about the chair as if it were her refuge; it was probably more accurately described as our refuge from her confusion.

네, 나는 대답했다. 할머니를 방문 하고 미국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내가 18개월 됐을 때 나의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프랑스를 방문 할 때마다 그녀의 증상이 점점더 나빠졌기에 나는 떠나기 싫었다. 쓰기연습을 할 때 그녀가 쥔 연필이 떨렸다. 그녀는 매일 먹는 바게뜨를 부엌 조리대에서 내려 접시 서랍에 넣었다. 늦은 밤 중얼거리며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서성였다. 그녀가 헤멜 때 우리는 불안했고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우리 가족들은 그 의자를 그녀의 안식처로 여겼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혼란을 잠재울 우리의 도피처였다.

In the summer of 2020, my grandmother stopped eating and getting out of bed. She had fallen, fractured a vertebra, and forgotten about it. I flew to France with a dozen of Mamie's favorite sesame-seed bagels, and I lived with her as she recovered, fetching prescriptions for the pain she was constantly rediscovering, and rubbing her back when she coughed until she retched. I lay in bed with her until she fell asleep. I fed her. I learne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what it meant to care for someone. After five weeks, my mom took my place as Mamie's at-home caretaker.

2020년 여름에 할머니께서 드시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넘어져서 척추(vertebra) 골절을 입으셨는데 그 조차 깜빡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베이글을 잔뜩 사들고 프랑스로 날아갔다. 그녀가 회복할 때까지 처방전을 받아오고 기침이 멈출 때까지 등을 쓸어 드렸다. 그녀가 잠들때까지 침대에 같이 누웠다. 말 그대로 그녀를 키우다 시피 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는 걸 깨닳았다. 다섯 주 후에 어머니께서 할머니를 우리집으로 재가 간호를 위해 모셨다.

Like so many families that are affected by Alzheimer's, we searched desperately for a new place where my grandmother could live. We viewed her isolation in her seventh-floor apartment as a risk to her health and safety, and felt that it was not only right but necessary to exchange what was left of her autonomy for the round-the-clock, structured care that she could receive at a nursing home. About half of the six hundred thousand people who live in France’s EHPADS, or "housing establishments for dependent elderly people." have dementia. These are imperfect institutions: in 2018, French nursing-home workers went on strike to protest staff shortages and cost-cutting, and, earlier this year, disturbing reports of abuse and neglect, untrained staff, and the rationing of food and diapers by a for-profit nursing-home company put the country's elder-care system under intense public scrutiny.

다른 알츠하이머를 겪고있는 집안도 그랬듯이 할머니가 지내실만한 장소를 찾아 헤멧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7층 아파트는 독거인데다 건강과 안전에 좋지 않다고 봤다. 그곳은 할머니에게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 자제력 대신 요양원(nursing home)에서 받게될 온종일(round-the-clock) 체계적(규격화된) 간호에 대비에도 필요치 않았다[자제력을 잃어(be left of her anatomy) 치매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면 종일 간호를 받게되는 처지가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혼자살고 있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 적절치 않다.] 약 육십만에 달하는 프랑스의 EHPADS, "요양보호 노년 주거"에 거주하는 노인 중 절반이 치매 환자다. 이 기관의 평이 좋지 않았다. 2018년 프랑스 요양원 노동자들이 인력부족과 예산삭감에 항의해 파업에 들었었고 올해초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인력들이 입소 노인들을 부적절하게 대하고 요양원 관리 회사들의 영리추구로 인해 부적절한 식재료와 기저귀를 공급한다는 폭로 기사로 인해 국가의 노인복지 체계에 면밀한 검토를 요구하게 됐다.

A nursing home in a nearby suburb finally offered her a place after weeks of uncertainty.

근교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몇주 후에 그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My grandmother's life now seems safer, but smaller. Her memory-care unit is locked with keypads to prevent her from wandering out and is rarely unsupervised; the woman who taught me to cook couscous no longer has a kitchen. My family is satisfied with her care: the staff is affectionate, Mamie is often cheerful during visiting hours, and she regularly participates in Montessori activities such as vegetable peeling and sing-alongs. I never saw her with pets when I was younger, but she now lets the nursing home's service dog, an enormous Labrador named Nova, cuddle with her in bed. Still, it seems inevitable that, as my grandmother's condition declines, she will lose the few freedoms she has left.

이제 우리 할머니는 이제 안전한 듯 했지만 그녀의 세계는 좁아졌다. 그녀의 치매병동에 자물쇄가 채워져 더 이상 배회하는 일이 없어졌고 늘 보호관찰됐다. 내게 쿠스쿠스 요리법을 알려주던 여인은 부엌에서 더이상 없게 됐다. 우리 가족은 그녀가 받는 보호에 만족했다. 직원들은 다정했고 할머니는 면회시간동안 활기차 보였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식물재배나 노래 부르기 같은 몬테소리 학습활동에 참여했다. 내가 어릴때 할머니가 반려동물과 함께한 걸 본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노바라는 이름의 요양원 안내견인 큰 래브라도를 침대에 올라 껴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상태가 기울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녀는 조만간 그녀에게 남은 자율행동을 잃게 될 터였다.

Last year, I stopped bringing her bagels after I noticed that they were furring themselves green inside their plastic bags. This year, she complained of being weaker, of fighting with her brain but not understanding why. She sometimes referred to her nursing home as her aunt's house, or the children's daycare where she worked for decades. Someday soon, she will no longer be able to play dominoes with me—she won't understand how to win, or even how to count the dots on each tile. Later, she might be moved to the unit next door, where people with more serious cognitive limitations live under even closer surveillance.

작년 나는 비닐 봉지 안에서 프른 곰팡이가 피는걸 보고는 할머니에게 베이글을 가져다 드리지 않기로 했었다. 올해에는 총기가 점점 사라진다며 불평했으나 그 이유는 모르는 듯했다. 가끔 요양원을 이모네 집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간혹 그녀가 수십년간 일했던 어린이 집으로 혼동하곤 했다. 조만간 그녀는 나와 도미노 게임을 할 수 없게 되리라. 게임을 하는 법도 잊고 말에 새겨진 점의 갯수를 세지도 못하게 될터다. 결국 그녀는 인지력에 심각히 손상되어 근접 관찰 하에 놓일 옆방의 병동으로 옮겨질 것이다.

Anyone who has cared for someone with Alzheimer's is likely to be familiar with this transaction. We cede their freedom to gain a sense of security—theirs, but also ours. We attempt to resize their world, removing the choices that might pose a danger to them. But I often wonder whether the standard approach of a nursing home—the constant surveillance, the rigid schedules forwaking, bathing, eating, socializing, and sleeping—is the best that we can offer to loved ones with dementia.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라면 이 변환과정에 익숙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율을 안전을 빌미로 거두어 들인다고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다. 우리는 그들에게 위험이 될거라며 선택의 자유를 뺏고 그들의 세계를 제약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요양원의 상시 감시, 기상에서 식사, 목욕, 교우 활동 그리고 취침에 이르는 짜여진 일정 같은 천편 일율의 과정이 사랑하는 가족이 치매에 걸렸다고 그리하는게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This summer, before going to see my grandmother in Grenoble, I visited a nursing home that aims to expand, not restrict, the liberties of people with Alzheimer’s. The Village Landais, situated in Dax, in southwestern France, is part of a movement to make memory-care units less like hospitals and more like small neighborhoods. Some of these facilities are designed to convince residents that little has changed—"that life is still as it was once, with children to take care of, and holidays at the seashore, and familiar homes to return to," as Larissa MacFarquhar wrote for The New Yorker in 2018. But the Village seemed to convey a slightly different message: that life remains full of choices and that autonomy enriches life.

올해 여름 할머니를 뵈러 그레노블에 가기전에 나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자유를 억제하기 보다 확장한다는 요양원을 방문했다.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닥스 소재 랑데 마을은 병원의 망각보호 병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추구하자는 움직임의 일부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에 더 가깝다. 이 시설의 일부는 거주자들에게 이전 삶과 거의 변함이 없다고 확신시킨다. "종전처럼 여전히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살고 휴일에 해변을 거닐며 낮익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라며 라리사 맥파쿠아가 2018년 더 뉴요커지에 기고 했었다. 하지만 그 마을은 약간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으로 삶이 윤택해 진다. [병원에서 요양원에서 타율적인 생활을 삶이라 할 수 있을까.]

Its residents can come and go from their homes as they please, whether through the unlocked door or through a window. They can wake and shower at their leisure; they can shout, pilfer sweets, make tea at 2a.m., sweep with the broom upside down, and handle sharp knives in the kitchen. Advocates for this kind of care argue that, for people with Alzheimer's, the risks of institutional dehumanization are just as profound as the physical dangers of cutting one's hand, or falling and breaking a bone. "Their cognitive troubles don't permit them to adapt to our world," Gaëlle Marie-Bailleul, the Village's head of medicine and a specialist in neurodegenerative disorders told me. "We adapt to them." Most nursing homes devote themselves to the narrow and perfectly reasonable goal of keeping residents safe and healthy. The Village Landais contemplates a broaderquestion: What might a good life with Alzheimer's look like?

그곳의 주민들은 잠기지 않은 문을 통해 그리고 창을 넘어 기꺼이 집으로 오간다. 편한 시간에 일어나고 샤워를 한다. 아무 때나 소리를 지를 수 있고 사탕을 빼돌릴(pilfer) 수도 있고 아침 두시에 차를 끓여도 되고 빗자루를 거꾸로 잡고 쓸어도 뭐라는 사람 없고 부엌에서 날카로운 칼을 쓸 수도 있다. 이 방식의 알츠하이머 간호 옹호자들은 주장하길 알츠하이머 증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도적 비인간화[요양병동에 가두고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의 관찰간호]의 위험이 손목이 잘린다거나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신체적 위험보다 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인지력 문제들은 우리 세상과 어울리는걸 허용하지 않아요." 신경이상 전문의 이자 마을의 의료담당 부장인 게일 마리유가 내게 한 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맞춰야 합니다." 대부분 요양원들에는 입소자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누구도 부인 못할 목적을 위해 스스로의 역활을 축소한다. 랑다이스 마을은 매우 원론적 질문을 던진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A hundred and eight people, of whom the youngest are forty somethings and the oldest are centenarians, live full-time on the seventeen acres of the Village Landais. Its sixteen group houses are clustered into small neighborhoods, and each house features two staff members, who are trained indisciplines such as home care, occupational therapy, and gerontology. Living areas are filled with natural light and second hand furniture. Hallways are designed as loops, without dead ends, to reduce confusion; each resident has her own bathroom, with a mirror that can be folded up when she no longer recognizes her own reflection.

적게는 사십대, 많게는 백세에 이르는 연령의 환자들 백팔명이 십칠 에이커 면적의 랑다이스 마을에 온종일 머물며 생활한다. 열여섯개 작은 구역으로 나눠 건물들이 이웃하고 있고 각 건물은 가정간호, 전문요법, 노인학(gerontology) 등의 훈련을 받은 두 명의 관리자가 상주한다. 일상은 자연채광과 중고가구들로 채워져 있다[병실의 전등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병실의 철제 집기들이 아니라.] 복도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막힘이 없도록 둥글게 설계되었다. 각 거 주자는 자신만의 침실을 가지고 있으며 방에 있는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더이상 인지하지 못할 때 접어 둘수 있다.

In the Village's restaurant, which is supposed to open to the public in 2023, I met Nadine Zoyo, who began baking as a child during the war and spent many years as a homemaker, catering the baptisms and weddings of loved ones. "She never stopped," her daughter Béatrice, who was dining with her, told me. As her Alzheimer's progressed, Nadine struggled with words, and repeatedly fell and injured herself. Because Béatrice could see her mother's apartment from her own, she told me, "I was always looking out the window." The Village seemed to reanimate Nadine: she used to sit still for long periods, Béatrice said, but now she knits, interacts with others, and seems to lose her train of thoughtless often. "It's extraordinary," Béatrice continued. "She is living again."

2023년부터 일반에 개방한 마을식당에서 나는 나딘 조요를 만났다. 그녀는 전쟁중이던 어린시절부터 빵을 굽기 시작해 오랜동안 주부로서 사랑하는 이들의 세례식과 결혼식에 봉사했다고 한다. "엄마는 쉬는 법이 없었어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그녀의 딸 베아트리체가 들려줬다. 알츠하머 증세가 깊어지면서 나딘은 단어를 잃어갔고 자주 넘어 졌으며 스스로 몸에 상처를 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엄마를 그녀의 아파트에 머물게 둘 수 있었다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늘 창밖을 내다 봤어요." 그 마을은 나딘의 행동을 바꿔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하염없이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고 베이트리체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뜨게질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때로 기억상실을 잊는 듯 했다. "아주 특별해요" 베아트리체가 계속 말했다. "엄마가 두번째 인생을 사는거죠."

In many respects, the Village lives up to its name. Residents can tend to a large garden each morning and feed Junon and Jasmine, two donkeys who keep the grass in check. A salon offers haircuts, and each house makes a daily grocery run to the épicerie, or supermarket. The store has no cash register or price labels, however; the cognitive work of budgeting and paying has been conveniently edited out. The Village's hundred and twenty employees, along with sixty active volunteers, travel the grounds on foot, or on bikes that are parked haphazardly around the campus. The medical staff do not wear lab coats; they conduct house calls, not office examinations. Marie-Bailleul told me that she tries to set aside expectations when she speaks with villagers during meals and walks. "They oblige us to be sincere, spontaneous, and in the present moment," she said. Does it matter if a patient mistakes her for a friend or a grandchild? If someone wants to eat yogurt with a fork, so what? As long as they have an appetite and feel cared for, these are positive experiences, she said.

여러 측면에서 마을의 삶이 향상되고 있다. 주민들은 아침마다 넓은 정원을 마주하여 마을의 잔디밭의 풀을 뜯는 두마리 당나귀 주농과 자스민을 먹인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수 있고 식품점(épicerie)이나 수퍼마켙에서 집집마다 매일 식료품이 배달된다. 하지만 상점들은 현금 계산대도 없고 가격표를 붙이지 않는다. 인지능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전통적인 과금과 지불 방식은 배제됐다. 마을의 백이십명에 달하는 직원들과 육십여명의 적극적인 봉사자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돈다. 자전거들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haphazardly) 놓여 있기도 했다. 의료진은 복장을 착용하지 않는다. 회진을 하지 않고 부르면 달려간다[병원이 아니라 그냥 마을이다.] 먹고 걸으면서 그녀가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때 어떤 기색도 제쳐 두려고 한다며 마리 베이유가 말했다[치매환자를 대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화하려 한다.] "그들은 진지하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매순간 우리를 따라요." 라며 말했다. 환자들이 그녀를 [의사 또는 직원이 아니라] 친구라고 여긴다거나 손녀딸로 여긴들 그게 뭐그리 대수란 말인가? 그들이 돌봐주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면 그것은 긍적적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치매환자들이 누군가를 돌봐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이상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이 살아났다는 뜻이므로 긍정적으로 봐야한다.] 

One of the most radical aspects of the Village is its insistence that a person with Alzheimer’s is not just diminishing into the sum of her symptoms, but flourishing and evolving as a human being until the end. Leticia, a forty-one-year-old villager with early-onset Alzheimer’s, is learning to play the guitar. Many residents who never previously engaged in the arts take to painting or collage-making, staffers told me, and former marathoners and cyclists can re-create long runs and rides within the village. (Academic researchers have noted that some people with dementia appear to enjoy enhanced artistic abilities; Mary Mittelman, a research professor at New York University, told me that, in the chorus she founded for people living with dementia and their families, those who may not remember what they ate for lunch are able to learn as manyas eighteen new songs for each concert.)

이 마을의 가장 혁신적인 면이라면 알츠하이머 환자를 단지 증상이 깊어지는 것을 지켜보기 보다 인간으로서 종국에 이르기까지 변해가는 모습으로 대한다는 점이다[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 길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모습이 다를 뿐이다.] 레티시아는 마흔한살의 주민으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그녀는 기타 연주를 배우고 있다. 많은 주민들이 이전에 해보지 않던 그림 그리기, 콜라쥬 만들기 같은 예술 분야를 배우고 있다고 직원들이 귀뜸해 줬다. 그리고 전직 마라톤 선수나 자전거 선수의 경우 마을 내에서 오래 달리기 자전거 타기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학술적 연구자들은 치매로 예술적 능력이 발현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뉴욕 대학의 마리 미텔만 연구교수는 치매에 들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립한 합창단에서 그들이 점심을 먹었는지 기억은 못해도 연주회를 위해 매번 열여덟 저의 신곡을 외운다고 했다.)

A bright-green train car sits in the Village library, hitched to nothing in particular. A therapeutic tool, its interior is realistic, with metal racks for baggage and a flat-screen television, which plays footage shot from a train as it rolls through a forest. Nathalie Bonnet, a staff psychologist, told me that the simulacrum of travel appears to quell a simple desire to be elsewhere: she has seen agitated villagers fall asleep on the car's cushy seats, or sit and articulate worries that they could not before.

마을의 도서관에는 특별히 누굴 태울 목적도 없는 밝은 녹색의 기차가 서 있다. 치유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이 기차의 실내는 실제와 아주 같이 철제 수하물 선반이 있고 벽에 걸린 평면텔리버젼에는 이 기차가 숲속을 달리던 모습을 상영하고 있었다. 이 영상은 마치 어디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망을 다잡게 해주는(quell: 누그러 뜨리다) 것 같다고(simulacrum: 복제품) 이곳의 정신과 의사인 나탈리 보네가 내게 귀뜸해 주었다. 그녀는 동요했던(agatated) 주민이 열차의 안락한 의자에서 잠들거나 앉아서 전례없이 걱정을 드러내는(articulate: 또렸히 말하다) 모습을 보곤했다고 한다[걱정은 현실을 인식했을 때 나온다. 치매 환자에게서 걱정이라는 지적자각을 찾기 어렵다.]

Bonnet, who has silver hair and was wearing earrings shaped like droplets of water, led me to a terrace in one of the Village’s little neighborhoods and explained its philosophy. "As long as they can do, we must be able to leave them the liberty to do," she said. "The spirit of security—of safety as a means to live longer—should be reconsidered. It's not about opening up all freedoms, either. It’s not that. It’s, 'What is the tolerable level of freedom to let the person live?'" Villagers can set the rhythm of their own existence, hour by hour, minute by minute. They can wash their own clothes, gather beneath expansive eaves, and walk unsupervised along looping wooded paths.

은발에 물방울 모양 귀거리를 한 보네는 마을의 소규모 이웃 중 하나에 접한 테라스로 나를 이끌며 그녀의 소신을 설명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원하는 것을 하게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오래 살기위해[사고를 피하려고]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다시 고려해봐야 해요. 그로인해 자유[=인간의 존엄]를 해치죠. 옳지않아요. 그것은 '인간으로 살 자유의 범위를 얼마로 정할지에 대한 질문'인 겁니다."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매 시간, 매 분마다 자신의 생활 리듬(rythm)을 정할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빨래를 할 수 있고 처마(eaves) 밑에 모여 앉거나 관찰자 없이 나무로 만들어진 둥글게 뻗은 길을 거닐 수 있다.

As Bonnet and I talked, a pair of residents ambled by. She asked a gloomy-looking woman, "How are you, Claudine?" Claudine, a former hairdresser ,shrugged morosely, tugging at her sweater and pant pockets.

보네와 내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몇몇 주민들이 우리 앞을 느긋하게 오갔다(amble by). 보네는 멍한 표정의 여인에게 "잘지내죠, 클로딘?" 하며 말을 걸었고 전직 미용사였던 클로딘은 뚱하게 어깨를 움찔하더니 그녀의 쉐터와 바지 주머니를 내밀었다.

Bonnet asked again how Claudine was doing. Sensing that something was wrong, she rose out of her seat and took the woman's hand.

보네가 다시 클로딘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음을 눈치채고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You're looking for something?" Bonnet asked softly.

"무슨 할말 있죠?" 보네가 부드러이 물었다.

"Excuse me," Claudine said sorrowfully, unable to explain.

"글쎄요" 클로딘이 설명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It's all right," Bonnet said, her voice softening even more. "I've got plenty of time."

"좋아요" 보네는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시간 많으니 천천히 말해봐요."

Time and intimacy are especially precious in under staffed nursing homes, and in families that care for those with dementia. Despite myself, I'd often felt irritated when I had to stop the clock in my world in order to accompany my grandma in hers. In Bonnet, I saw no sign of irritation. She asked Claudine whether she was worried that someone had taken her belongings. Claudine nodded, so Bonnet, still stroking Claudine's hand, suggested that she go check that her bag and coat were safe in her room.

요양원 직원들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에게도 시간과 공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나조차 내 할머니 안의 시계로 인해 내 세상의 시계가 멈춰지면 짜증스럽 곤 했다. 보네에게서는 짜증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클로딘에게 누가 자기 물건을 가져가서 그런지 물어봤다. 클로딘이 끄덕이자 모네는 클로딘의 손을 토닥이더니 가방과 외투가 방에 잘 있는지 가서 살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There's the style of communication where you have few words," Bonnet told me as Claudine walked off . "We find a way of decoding."

"몇 안되는 말이라도 소통하는 방식이 있어요 [같은 말도 이쁘게]" 모네는 클로딘이 멀어지자 내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풀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치매 환자와 소통하려면 그들의 언어를 풀어야(decoding) 한다.]

The Village's operating costs exceed six million euros a year, of which about two-thirds come from public coffers. In exchange, researchers are studying the experiences of Villagers, from their behavioral troubles to their medication use and levels of depression and anxiety. "It does not suffice to want to do well," Hélène Amieva, a researcher and professor of gerontology at the Université de Bordeaux who is independently studying the Village, said.

마을 운영비는 연간 육백만 유로를 넘긴다. 그중 삼분의 이는 공공기금으로 충당된다. 교류를 통해 학자들은 이상행동에서부터 의료 소요까지, 우울과 분노의 정도까지 마을의 경험(임상)을 연구한다[마을에서 수집한 행동학적, 의료적, 심리적 임상자료를 치매 연구에 제공하므로서 공공기금의 재원을 확보한다.] "재원이 충분하지 않아요." 마을에 대한 독립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보르도 대학의 노인학교수이자 연구원인 헬레나 아미에바가 말했다.

The Village seeks to demonstrate that its philosophy of elder care has measurable positive impacts—that the day-to-day quality of life of its residents improves, or that their disease progresses more slowly. Research into medical outcomes is still ongoing, although a survey has suggested that, since the Village opened, members of the public who live nearby have formed more positive associations with Alzheimer's, and may see those with the disease as warmer and more competent than they previously did.

마을은 노인요양에 관한 철학의 긍정적 긍정적 효능으로 주민들의 일상이 향상되었다거나 병의 진행이 누그러졌다는 점을 정량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찾고 있다.  의학적 효능에 대한 연구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계속 진행 중) 설문조사를 보면 마을이 개소한 이래 인근의 지역주민들에게도 알츠하이머에 대해 긍정적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나오고 이 병에 대해 이전보다 더 온화하고 더 친숙한(competent) 태도가 형성 됐다고 한다.

Another group of researchers is studying economic feasibility. Some families with financial need pay as little as three thousand euros a year, but others pay up to twenty-four thousand—and even that is not enough to cover the majority of the Village's operating costs. It remains to be seen whether medical savings—for example, in the form of fewer hospital visits or reduced medication use—will off set some of these expenses.

또 다른 일단의 연구자들은 경제적 측면의 효과를 연구 중이다. 재정지원이 필요한 몇몇 가족은 연간 삼천유로를 내는 반면 어떤 가족은 이만사천유로를 지불한다. 사실 이 정도로는 마을의 중요 운영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치 않다. 의료비 절약, 일테면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거나 치료비용을 감축해서 얻은 비용의 일부를 마을 운영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혁신적인 치매환자 마을로 인해 사회적 비용을 감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마을운영의 효과를 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표다.]

In the U.S., where one in four nursing homes faces employee shortages, experts were skeptical that such a model could ever be implemented on a large scale. "That kind of staffing is not even there in our I.C.U.s," Joe Verghese, a neurologist and the chief of geriatrics at Montefiore Health System, told me. Elena Portacolone, an associate professor of sociology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went so far as to reject the Village's basic design, and argued instead that Alzheimer's patients should be integrated into society. "To me, it's segregation," she said. "I think it's wrong." Manon Labarchède, an architect and sociologist who recently completed her Ph.D. dissertation about Alzheimer's, at the Université de Bordeaux, said that, if the village model remains closed off from the outside world, it will fail to change societal views of the elderly. Still, she said, it helpfully explores an alternative to traditional nursing homes. "It shows other things are possible."

네 곳의 요양원 중 한곳 꼴로 직원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서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식의 요양원 운영을 전반적으로(large scale) 실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이러방식의 인력 투여는 중환자실(I.C.U, intensive care unit)에서 조차 못합니다." 신경과 전문의 이자 몬테피오레 건강에서 노인병리학 책임자로 있는 조 버기스가 말해줬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 분교의 사회학과 부교수인 엘레나 포타콜로네는 마을의 기본 개념에 반대하고 그대신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사회속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게는 그런 마을이 고립(segregation) 처럼 보입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건축가이자 최근 보르도 대학에서 알츠하이머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마농 라브라쉐드는 만일 마을이 외부 세계와 분리되면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데 실패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방식이 전통적인 요양원에 대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 마을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Dementia isn't unique to our species—it also shows up in dogs, cats, horses, and rabbits—and has probably been with us for centuries. In a cultural and medical history of dementia, "Dementia Reimagined," the psychiatrist and bioethicist Tia Powell notes that the writer Jonathan Swift is thought to have been afflicted by it in his old age,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when he complained of a fleeting memory, an ill temper, and a lasting despondency. "I have been many months the shadow of the shadow of the shadow," he confessed in one letter. In another, he told his cousin, "I hardly understand a word I write." When Swift died at seventy-seven, in 1745, dementia was seenless as a medical condition than as an inevitable feature of aging or, in some cases, a kind of madness. Not until 1906 did Alois Alzheimer, a German pathologist, argue that one of his patients had lost his memory because of a tangle of proteins identified in his post mortem brain. Over the years, studies have suggested that Alzheimer's causes at least sixty percent of dementia cases.

치매는 인간에게만 있는 질병은 아니다. 개나 고양이, 말 심지어 토끼에게도 나타난다. 치매가질병으로 취급된지 한세기가 지났다. 치매의 문화사와 의료사를 다룬 "치매 재조명(Dementia Reimgined"에서 정신과의사 이자 생명윤리학자인 티아 파월은 작가 18세기를 줄곧 살았던 조나단 스위프트가 노년에 치매로 고통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가 기억이 깜빡(fleeting)하고 분노조절이 않되고(ill temper) 우울(segregation)지속 됐다고 한다. "나는 수개월을 어둠과 어둠 그리고 또 어둠 속에 지냅니다."라며 한 편지에서 토로했다(confess). 그의 사촌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는 "나는 내가 쓴 글조차 이해할 수 없구나." 라고 썼다. 스위프트가 1745년 77세에 세상을 떳을 때 의학적 소견으로 치매는 볼 수 없었고 노화에 따르는(inevitable) 증상 혹은 광증(madness)으로 여겨졌다. 1906년이 되서야 독일의 병리학자(pathologist)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그의 환자 중 하나가 사망후 부검(post mortem)한 뇌에서 단백질 변형(tangle: 꼬임)을 발견하고 이를 기억력 상실의 원인으로 제시했다(argue). 몇년에 걸친 연구 끝에 알츠하이머가 제기한 원인이 치매의 적어도 60퍼센트를 차지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suggest).

Americans long dealt with dementia by institutionalizing the people who experienced it. In the time of Alzheimer, the U.S. housed them in cramped poor houses, where they frequently came down with infectious diseases, and suffered chronic neglect and abuse. One 1909 report describes a Virginia poorhouse warden who stopped an older woman from wandering by anchoring her with a twenty-eight-pound ball and chain. Eventually, poorhouses were replaced by mental hospitals, and mental hospitals were replaced by nursinghomes. These facilities were a step forward, but they limit autonomy by design, and they often overuse antipsychotics as chemical restraints.

오랜동안 미국인들은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시설에 입시시키는(institutionalizing) 방법으로 다뤄왔다. 알츠하이머가 발표하던 당시에 미국에서는 환자들을 열악한 시설(poorhouse: 구호소)의 좁은(cramped) 방에 가뒀다(housed). 때로 감염병으로 오인됐고 만성질환(chronic neglect)과 학대(abuse) 받았다. 1909년의 보고서에 따르면 버지니어 주의 어느 구호소의 관리인이 거리를 배회하는 늙은 여자를 28파운드 짜리 쇠공이 달린 쇠줄에 묵어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보호소는 정신병원으로 대체됐고 정신병원은 다시 요양원이 됐다. 이렇게 [알츠하이머 환자를 다루는] 시설의 개선이 이뤄졌으나 본질은 환자들의 자율을 제약하는 것이고 정신병에 대처하여 화학요법이 종종 남용됐다. 

Dementia finally came to be seen as a public-health crisis in the late nineteen-seventies. In 1976,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spent $3.8 million on Alzheimer’s research; by the year 2000, federal funding for research on Alzheimer's and other types of dementia had reached four hundred million. But this money has overwhelmingly been spent on trying to eradicate Alzheimer’s, and not on experiments in dementia care, like the Village. Even the Alzheimer's Association, the country's leading advocacy group for people with the disease, envisions "a world without Alzheimer's," rather than a world in which we try to live with it peaceably. But the dream of vanquishing Alzheimer's has proved elusive. Alzheimer's drug trials almost always fail. In June, the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approved Aducanumab, the first novel Alzheimer's drug in almost twenty years—against the recommendation of an advisory panel, which overwhelmingly concluded that there  was insufficient evidence to deem the drug effective.

결국 지난 19세기에 치매는 공공보건의 위기로 대두됐다. 1976년에  국립보건원은 알츠하이머 연구에 3백8십만 달러를 썼다. 2000년에 이르러 알츠하이머와 치매 연구에 4억 달러의 연방제정이 투여 됐다. 하지만 재정의 대부분은 알츠하이머 치료(eradicate: 근절)에 쓰였고 알츠하이머 마을 같은 치매요양 실험에는 쓰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알츠하이머 협회 조차 "알츠하이머 없는 세상"을 지향한다(envision). 하지만 알츠하이머 퇴치(vanquishing)는 요원하기만 하다(proved elusive).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올해(2022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자문위원회의 권고에 반하여 아두카누맙(Aducanumbab)을 20년만에 최초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승인했다. 자문위원회는 그 약이 효과가 있다고 볼만한(deem)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Because the drugs keep failing, people are, like, 'What do we offer people?'" Kristine Yaffe, a neurologist and psychiatrist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told me. "What do we say to our patients?" In the U.S. alone, some 6.5 million people over 65, of whom a disproportionate number are women and people of color, already have Alzheimer's.  Between one-third and one-half of Americans aged eighty-five or older are estimated to have dementia. Most people live between three to eleven years after an Alzheimer's diagnosis; some survive for decades. Because of a shortage of elder-care infrastructure and workers, many of them will face the disease with far too little support. "We're not prepared," Esther Friedman, a University of Michigan sociologist who studies elder care, told me.

"약효를 못보면 우리는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분교의 정신신경과 전문의 크리스틴 야페가 내게 반문했다. "환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요?" 미국에만 약 6백 5십만명이 이미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65세 이상의  여성과 유색인종이다. 미국인의 삼분의 일에서 절반에 이르는 인구가 85세를 넘기고 있고 노인들은 치매를 앓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인 후에도 3년에서 11년을 살아간다. 수십년을 더 사는 경우도 있다. 노인요양 시설(infrastructure)과 인력의 부족으로 환자들은 매우낮은 지원을 받을 처지에 있다(will face). "준비가 부족합니다." 노인요양 관련 연구를 수행한 미시건대학의 사회학자 에스더 프리드먼이 내게 말했다.

News coverage of dementia is far more likely to focus on how to prevent it, or how much it burdens our health system, than to highlight the experiences of people who live with it. In surveys, many adults report fears that, if they were diagnosed, they might lose their health insurance, driver's license, or job. More than half expect a person with Alzheimer's to lose the freedom to make their own medical decisions, as my grandmother eventually did. "It's a disease that scares, and that repulses," Marie-Bailleul told me. As the sociologist Karen Lyman has written, people with dementia are often depersonalized into "merely disease entities." Powell notes in her book that, in 2007, a bioethicist even explored the philosophical argument that because dementia destroys personhood, a person who develops dementia has a moral obligation to kill herself. "Not killing herself would show selfish callousness," he wrote. "She causes unnecessary harm to others by imposing significant burdens on them rather than autonomously solving the problem."

치매에 대한 새로운 대책(coverage)들은 예방책과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비용에 치우쳐 있지 현재 앓고있는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대부분은 치매를 두려워 한다고 한다. 치매 진단을 받으면 건강보험에서 제외될 것이고 운전 면허가 취소될 것이며 직장을 일을까 걱정한다. 나의 할머니에게 그랬듯이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절반은 의학적 결정의 자율판단권이 박탈될 것이다. "그것이 이 병을 두렵고 혐오케(repulse) 만들죠." 마리 베이유가 말했다. 사회학자로서 카렌 리만은 치매를 앓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병증"으로 취급된다고 서술한바 있다. 파월은 2007년에 쓴 그녀의 책에서 언급하길 심지어 한 생명윤리학자는 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치매가 인간성을 파괴하기에 치매가 진행된 사람은 자살에 대한 윤리적인 저항이 없다고 한다(moral obligation to kill herself). 그[생명윤리학자]에 따르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는것은 이기적인 무관심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죠, 스스로(autonomously)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대한 부담을 지우므로서 불필요한 위험을 부르게 됩니다." [주) 무서운 시각인데 이 부분의 해석으로 맞는지?] 

Our fear and hatred of Alzheimer's ultimately seems rooted in our modern attachment to the idea of the self. "The self is also a creation, the principal work of your life, the crafting of which makes everyone an artist," Rebecca Solnit writes in "The Faraway Nearby," a memoir that touches on her mother's Alzheimer's, among other subjects. "She was herself being erased." By yoking our humanity to our cognition, however, we risk dehumanizing those whose grasp on memory, language, and perception slackens.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는 자아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근간을 두고 있는것 같다. "자아는 창의적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기초가 되죠. 그런면에서 모든 인간을 예술가입니다." 레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멀고도 가까운(The Faraway Nearby)"에서 여러 주제 가운데 그녀의 어머니가 앓던 알츠하이머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어머니는 그녀의 인생을 지워가고 있었다."  우리의 인식에 인강성에 대한 멍에를 짐으로써 역으로 우리는 기억과 언어 그리고 인식 부족을 움켜진 이들의 비인간화라는 위협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아[외부로 표출되는 행동의 주체]에 대한 강조로 이기적인 성향이 강해지다보니 기억상실 같은 자아가 부족해진 환자를 비인간적으로 다루기에 이르렀다.]

주)  철학적인 표현은 어렵습니다. 내용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해 봤습니다. 바른 해석인지 확신이 없으니 지적 있기 바랍니다.

Families may stop bringing loved ones with Alzheimer's to restaurants and gatherings; they may take away quotidian things, like the freedom to run errands or set the table or have neighbors.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알츠하이머 환자와 함께 외식을 한다거나 모임에 함께하기를 꺼린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심부름(errands), 식탁을 차리기, 이웃과 교류 같은 사소한 일상(quotidian)에서 배제된다(freedom to run~).

This summer, with a twinge of guilt, I realized that my family did not refer to Mamie's nursing home as her home, but rather as "là, ou elle est"—there, where she is. "We consider that, because you have lost your memory, you are incapable of anything," Pascale Lasserre-Sergent, the director of the Village Landais, told me. "We consider that you no longer exist as a person." The poet Tony Harrison wrote:

이번 여름 죄책감(twinge: 짜릿한 통증)이 들었다. 나는 우리 가족들이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그녀의 집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닳게 됐다. 그 대신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라고 했었다. "우리는 대개 당신의 기억을 잊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고 간주합니다. 더이상 인간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란다이즈 마을의 책임자 파스칼 라세르 세르겐트가 말했다. 시인 토니 해리슨의 시에서 이렇게 썼다:

If we are what we remember what are they
who don't have memories as we have ours,
who, when evening falls, have no recall of day,
or who those people were who'd brought them flowers.

우리가 누군가 기억한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기억은 나만 할까
저녁이 내리면 낮동안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니
꽃을 가져오던 이는 누구였을까

[주) 싯구 해석을 어렵다. 저녁이면 낮동안의 일들을 잊어버리며 사는 우리가 기억을 잃었다고 누군가를 비인간화 해서는 않되겠다는 뜻으로 이 시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In recent years, new philosophies of memory care have emerged. In 2009, a dementia village called the Hogeweyk opened in the Netherlands, funded mainly by the Dutch government. Its houses evoke various Dutch life styles—one is for urbanites, another is for culture lovers, and another is for people with religious affinities—and residents can visit a pub, restaurant, theatre, and supermarket. The Village Landais is not affiliated with the Hogeweyk, but the Village's press representative, Mathilde Charon-Burnel, told me, "Their example inspired us." The Village, she said, aims to take the ideal of autonomy even further, and to scrutinize its own impact by using a scientific approach. Even if researchers discover that the Village fails to improve patient outcomes, Charon-Burnel told me, they will still publish their results so that other organizations can learn from them.

최근 기억상실(memory care)에 관한 새로운 이론(개념)들이 등장(부상)하고 있다[지난 20여년간 알츠하이머 치료제나 예방약 개발에 재정을 투입해온 반면 최근에는 사회적 문화적 치유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2009년에 네델란드에 독일의 지원을 받아 호게윅(Hogeweyk)이라는 치매 마을이 설립됐다. 독일 풍 생활양식으로 꾸며졌는데 한 마을은 독일 근교의 모습을, 다른 한 마을은 문화 애호가를 위해, 또다른 하나는 종교 친화적인 양식으로 지어졌다. 주민들은 주점, 식당, 극장 그리고 수퍼마켙에 갈 수 있다. 란다이즈 마을을 따라한 것은 아니지만(not affiliated with) 이마을의 언론홍보 담당자 마틸드 샤넬 부르넬은 "그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동기가 됐어요."라고 말해줬다. 그녀에 다르면 이 마을은 향후에도 자율정신을 추구할 것이며 과학적 접근을 통해 그 효과를 세밀히 살펴볼(scrutinize) 것이라고 한다. 행여 연구자들이 환자들의 개선에 별 효과가 없다고 결론 내더라도 그 결과를 공표하여 다른 기관에서 다른 시도를 할 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그녀는 밝혔다.

These alternative approaches do not pretend that the disease is anything but cruel. Alzheimer's takes away so much that we consider essentially human: knowing,  remembering, expressing. But Bonnet, the psychologist, pointed out that people with Alzheimer's often show a gift for rich presence that eludes many of us. When patients forget about their own condition, a development called anosognosia, they sometimes feel better, as my grandmother did. They inhabit the present moment and may let go of troubling memories or fears about the future. Even as their experience of the world is transformed, they find ways to describe it that the rest of us can understand. "It can be very imaginative, very symbolic," Bonnet said. A resident might tell her that they took a flight to go grocery shopping; it felt like a long journey. If someone tells her "I saw my mother," she understands that someone took special care with them. Marie-Bailleul told me about a conversation she had with a woman who was grieving the loss of a fellow-resident. The woman pointed to the leaves of a tree, which were riddled with holes. "Look, he's crying," the woman said. "He lost his friend."

이들 또다른 시도는 고통스런 질병이라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 병은 인간의 기본 특성이라 할 지적능력, 기억력 그리고 표현력을 송두리째 앗아 간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 보네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때로 풍부한 재능을 보이며 우리를 놀래킨다(elude)는 점을 지적한다.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잊고 질병자각결여증(anosognosia)이 발현 될 때면 매우 호전된 모습을 보인다[일반인과 다름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할머니도 그랬다. 그들은 현재의 순간을 살며 괴로운 기억은 잊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그들의 세상경험이 변형되었을 지라도 그들은 나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내 우리도 이해할 만큼 표현한다. "아주 상상력이 풍부하고 상징적입니다" 보네가 말해줬다. 한주민이 식료품 가게에 비행기 타고 날아간다고 얘기해 준적이 있는데 그것은 멀리 간다는 뜻이다. 누가 그녀에게 "엄마를 봤어요."라고 했다면 누군가 자신에게 특별히 잘 대해 줬다는 것으로 이해 한다는 것이다. 마리 베이유는 먼저 떠난 한마을 친구 때문에 슬퍼하던 여인과 했던 대와를 들려줬다. 그녀는 구멍이 숭숭난 나뭇잎을 가리키며 "봐요 그가 울고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친구를 잃었어요." [주) 기사 원문에 인칭대명사 오류인지 환자의 말이라 인칭 대명사가 틀린 것인지 알 수 없다.]

My family tries to remember the things that my grandmother has forgotten. Her father fed seven children by farming someone else's land. When she was twenty, she married my  grandfather Angelo, a French Italian man twelve years her senior, who had survived eighteen months in a labor camp during the Second World War. Angelo worked at a bottling plant and later became a welder; Denise worked at a factory that made metal bearings, then at a day care.

우리가족은 할머니의 잃어가는 기억을 되새기려한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다른사람의 땅을 경작하여 일곱 자식을 먹였다. 그녀가 스믈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 안젤로와 결혼했다. 그는 프랑스계 이탈리아 남자로 할머니보다 열두살 많았다(welve years her senior). 2차 세계대전 때 18개월동안 노동수용소에서 지내다 살아남았다. 안젤로는 포도주 병입공장에서 일하다가 후에 용접공이 되었다. 데니스는 금속 베어링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주간 요양원(보육원)에서 일했다.

My grandfather developed Alzheimer's before my grandmother did. She knew the complicated feelings of pity and protectiveness, the uneasy impatience, the sweetness and sadness, of caring for a loved one with dementia. When they visited my parents in the U.S., he went out for a long walk while mistakenly wearing her size-five shoes, and she waited by the front door, fuming. She got embarrassed when he mistook the curtains at Olive Garden for giant hanging napkins. She was his primary caretaker until he died at home in France, from a lung infection after aspirating food. Then, within a year or two, she began to experience symptoms of her own. "I'm sick of this disease," she cried out one morning from her chair, according to a journal I kept at the time. "What did I do to God that he did this to me?" More than once, she told me that Alzheimer's was devouring her life. I grieve not only for the life she is forgetting but also for the hardship it has contained.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먼저 알츠하이머 병이 발병 했었다. 그녀는 동정(이타적)과 방어(이기적)의 복합적인 감정 들었다. 불안에 떨었고 사랑스러움과 슬픔의 감정이 함께 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부모님을 만나러 왔을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5사이즈 신발을 잘못 신고 한참동안 밖에 나가서 할머니는 문밖에서 그가 돌아올 때 까지 초조히 기다렸다. 올리브 가든(이탈리아 식당 체인)에 가서 커튼을 커다란 냅킨이 걸려있다고 해서 당황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음식을 흡입하다(aspirating food) [폐에 걸린 후] 폐렴에 걸려 돌아가실 때 까지 프랑스의 집에서 든든한 보호자였다. 한두해 후부터 그녀 자신도 같은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쓰던 일기(journal)을 보니 "나도 이 병에 걸렸어."라며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의자에 앉아 흐느끼며 한 말이었다. "내게도 이런 병을 주신 신께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같으면 '주여 제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했을텐데 신을 원망하는 태도의 차이가 느껴짐.] 알츠하이머병이 자신의 삶을 집어 삼킨다고 여러번 말했었다. 나는 그녀의 사라지는 일생의 기억 보다 그로인한 고통이 더 슬펐다.

My grandmother will probably never relocate to a place like the Village, but I have started to wonder whether I have the power to bring parts of the Village to her. How would my grandma choose to spend time with me if I allowed her to set our itinerary? Are there new hobbies or activities that I could invite her to explore—or old ones, like cooking, that I could reintroduce with a simple gesture, like bringing her potatoes or carrots that we could peel together? "Discovery is possible in this disease," Bonnet told me. Solnit, in "The Faraway Nearby," wrote about how Alzheimer's drew her closer to her mother: "In that era, I think my voice and other things registered as familiar and set her at ease, and perhaps she knew me more truly. And perhaps I her, as so much that was superfluous was pared away and the central fact of her humanity and her vulnerability was laid bare."

나의 할머니는 치매마을 같은 곳으로 이주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일부라도 그녀에게 옮겨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와 여행을 한다며 할머니에게 여행 일정(itinerary)을 짜보라고 할까? 그녀가 할 수 있는 새 취미나 여가활동을 뭐가 있을까? 요리 같은 예전부터 해오던 활동은 어떨까? 감자와 당근을 가져와 함께 까보자는 간단한 몸짓으로 그녀와 소통해 볼까? " 이 병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해요." 보네가 해준 말이다. 솔닛의 저서 "가깝고도 먼"에서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가 훨씬 가까워 졌는지 쓰고있다. "어머니가 병을 앓은 당시 나는 나의 목소리와 그밖의 [엄마를 대하는] 일들이 부드러워졌고(as familliar) 그것들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내 본심을 알아줬다. [대개 부모자식 간의 사이가 거친데 어느 한쪽에 병들면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나와 그녀 사이의 가식(superflous: 여분)이 깍여 나가서(pare away) 그녀의 인간성과 취약성이 [저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강하다'는 선입견을 벗어버리면 엄마도 병마에 취약한 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During my latest trip to see my mamie, I asked her, "Who am I to you?" She paused for a moment, then smiled. "You are my little sister," she said. Once, I might have fretted about how far from reality she had strayed. But this time I tried to share her interpretation of reality, instead of imposing mine onto hers. What does it mean to be a younger sister? It means that I am someone who has giggled, cried, cooked, and played with her. It means that she has protected me, and that she feels that she is safer when I am near. My grandmother's answer was not accurate, but it was truthful.

지난번 할머니를 보러가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누구예요?" 그녀가 잠시 머뭇 하더니 웃으면서 "내 꼬마 여동생이지." 한때는 할머니가 헤메는 세상과 내가 너무 달라서 조바심을 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녀를 내식[내가 생각하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강요할게 아니라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her interpretation of reality)을 나눠보려 한다. 할머니의 꼬마 여동생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그녀와 함께 키득거렸고, 함께 울고, 요리하고 놀던 누군가를 떠올렸던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보살펴 주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내가 옆에 있어서 안심 했을 것이다. 내 할머니의 답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A few days later, on my last visit of the summer, I found myself unable to say goodbye. I searched my mind for words that would capture how easy and familiar it felt to be with her, and that I wished I were not going, and that, as soon as I could, I would be back. "See you tomorrow," I told her. "À demain, machérie," she replied. See you tomorrow, my dear. ♦

지난 여름 할머니와 함게한 몇일 후 나는 할머니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나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가 불안해 하지 않을 말을 찾아내려 했다. 아주 떠나지 않을 것이고 곧 다시 찾아온다는 말을 찾아냈다. "내일 또 올께요." 그녀에게 말했다. "아 떼망 마쉐리." 그녀가 답했다. 그래 내일보자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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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lage Landais Altzhe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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