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3년 2월, 직업을 갖지 않는 삶은 인생의 낭비일까
내가 사는 곳은 산비탈 전답을 성토하여 택지로 개발해 생긴, 말그대로 '만들어진 마을' 입니다. 약 십오년 전에 조성되었고 우리는 칠년 전 쯤 구입해 삼년 전부터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처음 조성됐을 때 대부분 나중에 은퇴하면 내려와 지낼 요량이었는지 땅만 구입해 놓고 집짓기를 미루고 있더군요. 그후 십여년이 지난 지금 한 두집씩 집을 짓고 있네요. 서서히 은퇴의 시기가 다가오는 탓이지요. 그중 2년전 쯤 내려올 요량으로 집을 지은 이웃 중 한분이 작년에 밭을 돌보다 쓰러지셨는데 얼마전에 돌아가셨다 합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요. 우리는 내일을 대비해 오늘 열심히 일한다(돈을 모은다)며 분주히 지냅니다. 그러다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는 모르는 내일보다 아는 오늘을 즐겨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끄덕입니다. 하지만 쉽게 그러지 못하는 까닭은 불안 때문일 겁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불안이 제일 클겁니다. 소위 '통장 파먹고 살아야'하는데서 오는 아련한 불안은 쉽게 떨치기 힘듭니다.
사십여년을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날 내려놓겠다고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출근 날 수를 줄여가다 완전히 털어버린지 이제 육개월이 지났군요. 이 '직업없는' 나날은 인생의 낭비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그러다가 이 '빈둥거림'에 대해 나름 결론을 내려 봤습니다. 내일이면 다른 생각이 들지 모르니 잠정결론이라고 해두죠. 가만 생각해보면 지난 몇달이 그저 하릴없는 날들은 아니었습니다. '직업' 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매진 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됐죠. 멀게는 학창시절 뭣도 모르고 외우기만 했던 공식들이며 회로들, 심지어 영어단어들과 살며 주워들은 소소한 격언들의 의미를 어렴풋 하게나마 깨닫게 됐습니다. 아직도 더 배울게 많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분주해 졌습니다. '직업'을 가졌을 때 분주함과는 다른 넓은 안목을 가지게 됐다고 할까요. '먹고사는' 분주함 때문에 제쳐 뒀던 꿈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사회로 나가 직업을 가져야 하고 경제적 부유함을 쌓아야 잘 산 인생이라는 생각을 털고 이제 뭣도 모르고 따르던 것들에서 '아하!' 할 때마다 오래된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으로 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돈이 되냐 밥이 되냐' 라고 한다면야 할 말은 없군요. 벌어놓은 돈이 많은 모양이라며 반쯤 질시어린 시선도 신경쓰이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멋진 말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아직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직업을 갖지 않았을 뿐 색다른 분주함이 가득하니 '인생낭비'는 아니라며 스스로 위안해 봅니다. [써놓고 보니 '개소리'가 길었군요.]
2월은 봄을 대비하는 달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할일이 없이 그저 기다리는 달 입니다. 한낮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도 줄었군요. 그러고 보니 3월이면 새학기의 시작이니 겨울은 안녕 입니다. 텃밭 농사용으로 퇴비를 한 팔렛(50포) 받아 놨는데 한켠으론 저걸 언제 다 뿌리며, 밭을 갈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 백배지만 뜯어먹을 채소들 생각에 뿌듯합니다.
겨울 매서운 추위를 잘 이겨낸 마당냥이들도 봄볕이 반갑다며 야단이구요. 거실로 들어와 호사를 누렸던 꼬꼬 오누이는 의자를 차지하고는 내주질 않고 있네요.
부엌 창가 화분에서 꽃을 피운 딸기가 달리고, 텃밭에 심어뒀던 작은 비닐 하우스(?) 속에도 고수와 시금치가 쑥쑥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선화, 튤립들도 싹을 내밀었고 열매나무에도 움이 트기 시작 합니다. 나비 한마리가 날아 다니고 있네요.
아침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새 모이대에 땅콩과 쌀알을 올려 놓으면 못본 사이에 다 물어가네요.
2월의 블로그 게시글이 30여개 넘게 썼는데 모두 아마추어 무선에 관한 글입니다. 이번 겨울 내내 이 취미로 보냈습니다. 3월에는 올해 첫 아마추어 무선 종사자 검정 시험이 실시된다고 합니다. 혹시나 필요한 분이 있을까 싶어 매일 2~30문제씩 골라 문제풀이 글을 연재 하고 있습니다. 이미 1급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수년전에 그저 문제집 외우던 것을 다시 꺼내 해설을 달아보니 그때 몰랐던 것들이 새삼 스럽군요. 덕분에 해설을 붙이며 공부가 됐고, 이 또한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시원함을 맛보고 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전파통신 전자회로 실험 글을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글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실험을 해보려 합니다. 아울러 소출력 무선국 꾸미기도 곁들이기로 하구요. 이제 텃밭 농사가 시작되면 마음 만큼이나 몸도 분주해 질테니 '빈둥거릴' 틈이 없겠습니다. 인생에서 '직업'은 그저 한 요소일 뿐, 꼭 필요하다거나 충분한 요소는 아닐 겁니다. 단! 건강은 꼭 필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