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월 25, 2017

2018 수능 시험을 봤다.

2018 수능 시험을 봤다.

2017년 11월 23일. 드디어 수능 시험일. 포항지역에 강도 5.4의 사상 두번째 강진의 여파로 일주일 연기되는 곡절을 격고난 끝에 수능일은 오고야 말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새벽 4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까? 하다가 뭐 몇시간 더 본다고 달라지랴 싶다. 되짚어보면 볼수록 기억나지 않는 공식이 수두룩이다. 이 엉성한 기억력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나이탓만 하며 늙어가기엔 억울(?)해 대학공부 도전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눈뜨면 하던대로 "월든"을 펼쳤다. 하루 한쪽씩 원서로 읽기 시작한지 14일째다. 아무래도 시험날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약간은 분주하다. 반쪽만 읽고 덮었다.

커피 한잔 내리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도시락도 싸고, 보온병에 커피도 내려 담았다. 이것 또한 얼마만의 도시락인지 모르겠다. 수능 덕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82년 겨울이었던가. 35년전, 그때는 아마 12월 초중순경에 학력고사를 본 것 같다. 과외가 금지되고 교육방송을 시작하던 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교육방송이 팝송 가사로 배우는 영어 프로그램이었던 듯 싶다. 비틀즈의 She's got a ticket to ride. 를 틀고 있었다. Think I'm gonna to bad... She's got a ticket to ride. "나빠질 것 같아...그녀가 떠나는 차표를 끊었다네" 이 가사를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시험 당일날 충격아닌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뭔 뜻인지 몰르겠던 거다. 이게 진짜 영어구나 싶었다. 그후 30여년간 머리속에 맴도는 후렴구다. "씽깜~ 고나 투베에드~ 쉬스 가러 티켓 투 라이드~" 이렇게 후렴구가 머리 한구석에서 맴도는 현상을 "귀벌레"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강박장애로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리 괴롭진 않으니 병 까지는 아니다. 다만 생뚱맞게 학력고사 보러가는 아침에 들은 충격 덕에 그간 영어에 꽤나 많이 시간을 투자 했었고 자신도 생겼다. 이것도 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2017년 수능 시험날 아침에 들은 교육방송도 영어 프로그램이니까. 오늘 아침에는 티나 킴 선생님의 아침 인용문이 인상적인 "김대균의 토익킹", 서미소랑 선생님의 예쁜 목소리 "이지 라이팅" 그리고 피터 빈트 선생님의 짖굳다 싶은 목소리의 "귀가 트이는 영어"를 들었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하며, 아침을 먹으며 듣는 방송이다. 그러고 보니 교육방송에 참 고맙기 그지없다. 수능 준비 한다고 거의 공짜로 수업을 들었으니 말이다. 특히 수학과목의 세분 선생님(기하와 벡터의 차현우, 미적분 II의 김명수, 학률과 통계의  심주석)과목을 듣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수학을 다시 이렇게 공부하게된 계기가 되었으니 남은 인생 2막을 열수 있는 계기라고 해도 좋으리라. 너무나 고맙다.

이번 수험장은 집에서 2.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계남 고등학교다. 30여년전에는 용산 오산중학교 였다.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갔었다. 꽤 추운 날씨에 교문 밖에서 자식들이 시험을 치루는 내내 떨며 함께 시험을 치루고 계셨다. 아마 점심도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셨을 거다. 그때 부모님들은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택시를 부르려 했으나 곧바로 응답한다는 카카오 택시조차 없다. 아마 수험생 위주로 모두 배차하는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도시락 가망을 들고 길가로 나서기로 했다. 다행히 크게 날씨가 춥진 않았다.

출근길이 늦춰진 탓인지 6차선 도로에 차들이 많지 않았다. 택시들 몇이 지나가는데 모두 '빈차'등이 꺼진채 쌩쌩 지나간다. 손을 들어도 택시가 서지 않는다. 직장인 출근하려는 것으로 보이는가 보다. 대학입학 시험은 온 국가적 행사다. 심지어 안보도 없다. 군대도 쥐죽은 듣 조용히 해야 하니까. 이날은 모든게 수능시험 위주로 돌아간다. 수능에 비리가 있거나 사고를 내면 정권이 흔들릴 거라는 얘기가 빈말은 아닌가보다. 하기야 전정권의 비리가 밝혀지기 시작한 단초가 어느 여대의 입시부정 항의에서 시작된 것 아니던가. 한낮 직장인 출근정도는 그냥 무시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지나가는 택시를 쳐다보고 있을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겉으로 보기에 수험생이 아닌것이 분명한데 자발적으로 택시가 서줄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수험표라도 꺼내 흔들어야 하나 하며 머뭇거리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빈차가 천천히 다가온다. 손을 들었더니 다행히 서준다. 수험장까지는 10여분이 소요됐다.

수험을 치룰 학교 앞이 학생을 모셔온 자가용들로 부산하다. 학교 앞에 차량이 정차하는 것을 정리하느라 교통 경찰의 호각 소리가 요란하다. 역시 수험생이 탄 차는 막무가내로 학교 문앞까지 들어와 정차한다. 교통 경찰도 이날은 별 수 없다. 수험생뿐만 아니라 그 자식을 둔 부모도 상전대접을 받는다. 내가탄 택시는 학교 정문 앞까지 가지 못하고 북새통을 피해 사거리에서 꺽어 내렸다. 수험장이 눈앞이긴 하지만 신호등을 두개나 건너야 했다. 선배들을 응원나온 후배들의 함성이 쟁쟁 하다. 그사이를 뚫고 들어가려는데 누가 잡는다.

"수험생 이세요?"

정문을 통제하는 분인 모양이다. 늙은 수험생 처음 보시나 보다. "네"하고 쳐다보니 씨익 웃는다.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받게될 질문인가 싶어 같이 웃었다. "학생 이세요?" 대학생 할인 혜택은 어떤게 있을지 잠시 상상해 봤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야 할테니 서둘러 교실을 찾아갔다. 고등학교 교실의 인상, 책걸상은 별 차이가 없지만 모두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옛날 조개탄 때던 그때에 비해 따뜻하고 쾌적했다. 역시 많이 바뀌긴 했다. 바뀐게 어디 냉난방 시설 뿐이겠는가.

첫시간은 국어. 45문제를 80분에 걸쳐 풀어야 한다. 시험지를 받아드니 쪽수만 무려 20쪽이다. 국어 시험에 한자와 고전이 많이 빠지고 현대문이 많다. 지문 내용도 상당히 다양하다. 단지 국어 읽기쓰기 시험이 아니라 학습 활동 전반을 다루고 있다. 시소설 문학의 감상, 어휘의 발달같은 전통적인 국어 문제는 오분의 일도 않되는 것 같다. 학습 활동, 발표계획, 토의에 대한 지문이 많다. 더구나 경제 관련된 설명도 있다. 환율과 무역거래에 관한 경제현상을 묻는다. "오버슈트"라는 경제 단어는 처음본다. 게다가 무슨 국어시간에 그래프까지 동원되는가 말이다. 또다른 긴 지문으로 디지털 통신에서 다루는 채널전송, 소스코딩,인트로피 부호화를 설명하는 지문이다. 차라리 영문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을텐데 국문으로 써놓으니 한참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문제 예문에 허프만 부호화를 하라는 문제까지 있었다. 그 다음날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한국은행 직원도 "오버슈트" 문제 못푼다더라는 기사가 실렸다. 내 생각에 IT관련 전문가도 엔트로피 코딩 문제 못 물었을 것이다. 이것을 푼 고등학생은 어떤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일까. 가끔 입시지도 방송을 보노라면 고등 학생들에게 신문을 자주 보라는 이야길 하는걸 들었다. 입시 문제가 이렇게 바뀌는 탓인가보다. 근데 신문기자들의 전문성이 의심가던데,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말이 나왔으랴. 겨우 삼분의 이쯤 문제를 읽어 봤는데 십분 남았다는 예비령이 울린다. 큰일이다. 부랴부랴 그나마 풀어놓은 문제의 답안을 옮겨 표시하고 나머지 십여 문제는 그냥 찍었다. 진이 빠지기 시작한다.

둘째 시간, 수학이다. 그나마 준비를 좀 해온터라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한다. 약 30문항을 100분에 풀어야 한다. 여덟문제는 단답형이라 해서 답이 정수 세자리로 표시하도록 문제가 구성되어 있다. 첫문제를 펼쳤다. 평이하다. 두 벡터의 합을 구하라는 것이다. 객관식 선지를 보니 숫자가 한자리다. 급 당황 했다. 문제에서 이차원 벡터의 합을 구하는데 선지는 한자리 숫자라니? 벡터 더하기 벡터는 벡터 아니던가? 그렇다면 두 벡터를 더한 벡터의 스칼라 크기를 계산 하라는 것인가? 답은 (4,1)인데, 크기는 제곱근으로 나오는데 역시 선지는 한자리 정수다. 고민하다 문제를 다시 읽어 본다. 두 벡터를 더해서 "성분의 합"을 구하란다. 세상에! 벡터를 다루며 성분의 합이라니! 지난 수십년간 그래도 공학도로서 임해왔지만 벡터 성분의 합을 가지고 뭘 해본적이 없다. 객관식 문제를 내려니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당황 스럽다. 이런저런 고민아닌 고민을 하는 사이에 십분이 흘럿다. 겨우 1번 문제 가지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니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객관식 문제 중간쯤 도달해서 또 막혔다. 사인 제곱과 코사인 제곱이 있는 방정식의 해를 구하라는 문제다. 간단한 삼각함수 제곱 공식을 적용해서 이차 방정식의 인수분해로 풀면 된다. 그 공식은 그자리에서 증명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제다. 어렵지 않다. 사인 값이 1과 -1/2인 엑스 값을 구하면 된다. 엑스를 구했더니 선지에 답이 없다! 뭘 잘못했나 싶어 방정식부터 다시 풀어본다. 암산으로도 될 만큼 간단한 방정식이지만 꼼꼼하게 써가며 풀어본다. 앞서 푼 것과 똑 같다. 당황 스럽다. 뭘 잘 못했을까? 인수분해를 일일이 써가며 다시 푼다. 답이 없다! 분명히 사인 엑스는 1 과 -1/2 아닌가. 그렇다면 엑스는 2분의 파이와 육분의 칠파이 아니던가? 시험지 한바닥이 온통 이 문제 푼다고 흔적이 한가득이다. 한참을 노려보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 마이너스 1/2이 되는 사인 엑스는 두 곳이라는 것을. 이차식 인수분해의 해는 둘 이지만, 삼각함수처럼 주기함수의 경우 만족하는 해는 반복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제야 생각난다. 맙소사, 순발력 없음에 스스로 짜증이 난다. 이것 푼다고 10분이 넘게 가고 시험지 한바닥이 까맣다. 머릿속도 까맣다. 겨우 객관식 문제를 풀어가는데 20분도 안남았다. 단답형 풀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문제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뭐 하라는 소린지 문제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냥 풀라고 하면 될 것을 단답형에 맞춘다고 이리저리 서술해 놨는데 이미 헝크러진 머릿속에 들어질 않는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배에서 주책없이 꼬륵 거린다. 배고푸다. 시험종료 예비령이 울린다. 결국 단답형은 6개나 빈공란으로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객관식 문제도 제대로 푼게 아니다. 아! 어쩌랴. 괜시리 상대 없는 화가 치밀다 기운이 쏙 빠진다. 더블어 의욕도 떨어진다.

오전 시험을 치루고 나니 배고푸다. 시험을 그렇게 치루고도 배고푼걸 보니 대학에 가야 한다는 절박함 없음이 스스로 느껴진다. 일단 싸온 도시락이니 밥을 먹었다. 그와중에 맛있게 잘 먹었다. 학생들 중 도시락을 싸온 학생은 절반도 않된다. 아마 매점에서 사먹는 모양이다. 창밖넘어 교문을 바라본다. 아무도 안보인다. 예전 같으면 추위에 떨며 치성드리는 어머님들의 모습이 뉴스 한꼭지를 장식 했을 텐데 요즘은 그런 걸 본적도 없음이 기억난다. 세월따라 모성의 형식도 변하는 것이리라.

세째시간, 영어. 사실 수능 영어공부를 따로 하진 않았다. 맨날 듣고 보고 읽고 하는게 영어인데. 영어 시험은 70분간 45분제를 푼다. 시험지를 받아드니 묵직하다. 국어 만큼이나 분량이 많다. 처음 17문제는 방송되는 것을 듣고 선지를 고르는 듣기 평가다. 방송 중간에 다른 학생들의 시험지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문제를 풀 단서가 나오면 얼른 답 표기하고 나머지 지문 방송은 듣지도 않고 뒷쪽 문제를 살펴보는 모양이다. 아마 답 찾으면 더 보거나 듣지말고 넘기라는 연습을 하는 모양이다. 듣기 문제가 평범하게 끝났다. 나머지 문제들은 주제를 찾거나, 내용 진위를 판별하거나 빈칸을 채우는 형식이다. 이렇게 많은 지문을 제시간에 다 읽고 문제를 푸는게 가능 한가 싶을 정도로 지문이 많고 길다. 얼핏 들은 바로는 문제의 지문을 다 읽을 필요 없이 문제 먼저 보고 답나오면 그만 읽으라더니 그래야 했었나보다. 의심많은 중년의 생각에 혹시나 뒷부분에 무슨 함정이 있지나 않을까 싶어 끝까지 다 읽어가며 푼다. 종료 예비령이 울린다.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10여개나 남았는데. 남은 지문은 2페이지나 된다. 갑자기 의욕이 뚝 떨어진다.

국어든 영어든 실용문 위주다. 빨리 읽어내야 했었다. 감상하고 앉았을 때가 아니다. 멋진 문장이 나왔던 것도 아니였지만 말이다. 수학도 그럴줄은 알았지만 문제의 독해가 지배 했다. 많은 연습과 즉각적인 반응이 중요했다. 시험장에서는 원리와 증명을 해 보이는게 아니니까. 시험 중간 쉬는 시간에 학생들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으니 연계문제에 나왔느니 아니니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같거나 비슷한 문제와 지문을 미리 보고 왔다는 이야기 인가보다. 문제를 보자마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것은 평소 많이 풀어봤기 때문 이겠지. 이렇게 많은 분량과 이리저리 비틀어 놓는 것은 객관식으로 평소 공부한 것을 측정하는 방법의 일환이란 걸까? 변별력을 갖춰야 하는 시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아! 중년의 순발력 없음을 한탄해본다.

넷째시간, 국사. 재미있다. 교양 프로그램만 열심히 봐도 될 것 같다. 이어서 과학탐구.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문제에서 언급된 수준은 엄청나다. 하지만 내용은 뭘 묻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수업중에도 과학을 이렇게 가르치진 않을 것이리라. 오후가 되니 시험을 잘 치룬 것도 아니라 그런지 체력이 금방 바닥났다. 더블어 의욕도 떨어졌다. 그간 모의고사한번 안보고 있었으니 수험 준비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없으니 할말은 없다. 역시 시험은 경험이 중요하다.

재수를 해야하나, 고교 수학문제 푸는 연습 대신 수리물리를 공부해서 편입을 할까 기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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