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관측 입문의 함정
세상에는 수많은 취미가 있지요. 몸으로 때우는 것에서 머리를 써야 하는 것, 재수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공부를 취미로 가진 사람도 있어요. 취미로서 천체관측은 어느 축에 속합니까?
서점에 가면 축구나 등산에 대한 이론서가 있는 것을 봐도 어떤 취미든 한단계 높은 경지로 오르려면 공부가 필요하긴 합니다. 머리를 써야 할 것 같은 바둑이나 장기, 심지어 전자 게임의 경우 입문서를 보며 시작하는 경우는 참 드믈죠. 알음알음으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해본 후" 공략집을 따라하다 실전으로 익힙니다.
천체관측 취미는 운없게도 공부를 취미로 갖게 만드는 취미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두운 밤 그저 고개를 하늘로 쳐들기만 해도 보이는 해와 달과 별. 저걸 쳐다보는 것이 뭐 어렵다고 공부씩이나 필요한가 싶어 서둘러 망원경을 삽니다. 그후 쳐다본 별은 "에게게?" "이게뭐야?"
남들이 다 봤다는 그 화련한 모습의 별은 도데체 어디에 있나? 더구나 천문학 서적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읽은 바로는 내가 가진 싸구려 망원경으로도 충분히 멋진 천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던데 왜 나는 그런 멋진 장면을 볼 수 없을까?
공부가 필요하다니 책을 사봐야 겠다는 맘을 먹습니다. 책보고 "따라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천문서적을 보고 다시 좌절합니다. 천문학 입문서는 "공략집"이 아니었던 겁니다. 천체관측은 다른 취미처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단계에 가기가 벽이 너무 높아보입니다.
예능 방송에서 흔히 "분량"을 뽑는다고 하지요. 천체 입문서도 분량을 뽑기위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수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 서적인데 거짓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천체 입문서의 내용을 보면 이렇더군요.
처음 몇개의 장은 저자도 겪었다는 초보자 시절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같은 초보자로서 동감하게 되고 자신감을 얻습니다. 관측장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대한 망원경이 필요 없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어서 천구 좌표 이야기가 나오고 광학이 나오고 망원경의 원리가 나옵니다. 머리아 푸긴 하지만 꾸욱 참고 그 다음 장을 읽어가보죠. 별자리가 나오고 좌표가 등장하며 관측할 만한 천체들이 등장하면 책을 덮을 수 밖에 없네요.
다수의 천문 관측 입문서가 2/3 이상 성도로 채워져 있습니다. "공략집"을 기대했는데 천체 "목록집"이라니, 이건 아니잖아?
인터텟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보면 망원경 추천, 도서 추천을 바라는 글이 제일 많이 올라 오네요. 친절한 답글대로 해봐도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습니다. 천체관측 입문의 가장 좋은방법은 관측회에 따라가 선배님들의 지도를 받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주변머리가 없어 그것 마져도 쉽지 않다면 좋은 수가 없을까요?
여전히 초보자인 제가 생각하기에, 무작정 망원경 사고 카메라 들이대고 전문서적 사는 입문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이렇습니다.
1. 망원경 사지말자.
내가 가진 망원경을 통해 보는 천체의 모습은 절대 멋지지 않습니다. 뭔가 멋진게 보일 것이란 생각에 망원경 질러봐야 그냥 맨눈으로 보는 것이나 똑같아 적잖이 당황 하게 될 겁니다. 망원경으로 봐도 그냠 밝은 점으로 보일 테니까요. 무슨 뿌연 성운끼? 초보 눈에는 그런거 안보입니다.
2. 사진 찍을 생각도 말자.
흔하디 흔한 별 일주사진 찍는 것도 한두번이지 망원경으로 대상 찾지도 못하는데 뭘 찍겠다는 것인지? 괸시리 멋진 사진 찍겠다고 나서봐야 장비병만 들 뿐입니다.
3. 입문자의 장비는 맨눈이다.
맨눈으로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별좀 봤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별자리를 익히는데 관측 장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죠. 별자리는 옛날부터 맨눈으로 보며 구획지어놓은 것이라 엄청나게 넓은 영역에 걸쳐 분포된 별의 집단이죠. 시야가 넓다는 쌍안경으로 봐도 시야에 들어오는 별자리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먼저 맨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시죠. 그리고 몇개의 별이 보이는지 세봅니다. 오래 쳐다보면 볼 수록 셀수 있는 별이 많아질 겁니다. 밤하늘을 실증 내지 않고 쳐다볼 수 있는 끈기도 아주 유용한 관측도구 입니다.
4. 별자리를 알자.
맨눈으로 셀 수 있는 별의 수가 늘어났으니 별자리를 찾아보죠. 보고 싶은 별을 찾으려는데 입문서에 무슨 별자리의 어느별 옆의 어디쯤 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을 흔히 봅니다. 그럼 별자리를 알아야 겠는데 누구 말 듣자니 별자리는 그냥 표지일 뿐 중요하지 않다는 군요. 실제로 전문 천체 연구자들 중에는 별자리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특화된 연구 영역이 있는 데다 컴퓨터화된 최고 관측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이용하는 천문대에서 별을 찾는 방법은 컴퓨터에 의해 정확하게 계산된 천구 좌표를 이용하겠지요. 또 어떤 천문 학자는 남이 찍어준 사진을 연구하니 별을 직접 찾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추어 천문가는 별자리를 찾고 별을 쫒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요?
별자리를 알려면 성도(별 지도)가 필요 할텐데 성도 보는 법 자체가 난관이 아닐 수 없죠. 게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별자리는 외우기도 어렵습니다. 이럴 땐 성도 소프트웨어가 실행되는 휴대 전화나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뭐든 자동으로 찾아주는데 익숙해 지면 공부가 않됩니다. 길찾기에 GPS가 흔하다고 독도법을 무시할 순 없잖아요. 별자리 판을 하나 마련하여 이를 보는 법을 공부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나중에 성도 보는법, 천구의 움직임도 자연스레 배우게 될 겁니다. 아는체 좀 하려는데 휴대전화 꺼내들고 하늘로 쳐들면 모양 빠지죠.
별자리 공부를 하려면 선배를 만나 지도를 받는 것이 누가뭐래도 최고의 방법입니다.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렵기도 하거니와 글로 쓴다 해도 몇장이면 됩니다. 책으로서 "분량"을 맟춰야 하니 대개 천문 입문서들은 천구 좌표계를 설명하며 피곤을 강요하고 당장 궁금하지도 않은 전설을 논하며 관측에 도움될 것 같지도 않은 (수준과는 상관 없는)성도를 곁들여 놓곤하죠. 당장 별자리 찾기가 궁금한데 다 읽어보기 곤혹스럽습니다. 제가 본 책 중에 "The Year-Round Messier Marathon Field Guide"가 아주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군요.
http://www.amazon.com/Year-Round-Messier-Marathon-Field-Guide/dp/0943396549
별자리 찾기는 5장 만 보면 되겠더군요.
https://drive.google.com/file/d/0B0_em-XCeoaTWHBLZzM4bWxHUVk/edit?usp=sharing
5. 어디로 가야하나
무조건 어두운 시골로 갑니다. 적어도 큰곰자리의 7개 국자가 다보이는 곳. 북극성을 볼 수 있다면 아주 좋은 관측지입니다. 흔히 북극성이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북극성을 볼 수 있는 곳은 시골에가도 그리흔치 않죠. 그렇다고 도심에서는 천체관측이 불가능하다고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진정 천문학이 취미라면 직접관측이 꼭 아니라도 남들이 찍어놓은 사진에서 별자리 찾기를 해보죠. 성도와 맞춰보며 별자리를 찾아보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천문 지식이 늘 겁니다. 후에 어쩌다 캠핑이라도 갔다가 하늘을 보고 그 별자리가 보이면 아는체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날 밤 내내 정말 스타가 될지도 모릅니다.
6. 망원경을 이해하자.
망원경을 샀다면 보고 싶은 대상을 겨냥해 보죠. 쉽지 않을 겁니다. 제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대상을 겨냥할 능력이 없다면 소용없겠지요. 그럼 왜 관측장비로 대상을 겨냥할 수 없을까? 맨눈으로 보느 하늘에 비해 망원경을 통해 본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이죠. 혹시 국자 모양의 큰곰자리 본적이 있다면 이해가 될 것이죠. 사람의 맨눈은 하늘 전체를 담을 만큼의 시야각이 넓습니다. 큰곰자리리의 범위는 15도 가량 된다. 10x50짜리 쌍안경이나 파인더의 시야각은 겨우 6도 범위에 그칩니다. 국자의 맨 앞 별 두개가 들어올 정도밖에 않됩니다. 망원경이라면 배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작 수십 분에 불과합니다. 맨눈으로 별이 저기 있다고 망원경으로도 금방 그별을 조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물며 조준경(파인더)와 망원경의 조준 축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면 관측은 어렵겠지요. 망원경을 이해하고 조절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초보자는 어찌하오리까?
망원경 사지말자. 멋모르고 샀더라고 망원경 들이대지 말자. 기운만 빠질 겁니다. 그래도 기왕 산 것 썩히기 아까우니 달이나 목성,토성 금성 정도는 봐주죠. 별의 일주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끈기를 가지고 맨눈으로 하늘을 보며 몇개 안보이는 별이라도 친해지는 겁니다. 하루하루 보이는 별의 갯수가 늘어나면 별자리를 익히는 겁니다. 한번에 별자리를 다 찾을 수 없다고 실망 할 필요 없습니다. 사실 모든 별자리들이 늘 떠있는 것도 아닙니다. 큰곰, 카시오페아와 북극성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사자, 궁수, 허큘리스, 전갈, 백조, 오리온, 큰개 정도만 알아도 할말이 엄청 많습니다. 그외 여러 별자리가 있긴 하지만 어두운 별로 구성되서 맨눈으로 찾아지지도 않습니다. 하늘을 보다 밝은 별이 보이면 저건 무슨별이라고 주워 섬길 정도만 되도 훌륭하죠. 아크투르스, 스피카, 안타레스, 베가, 카펠라, 시리우스, 레귤루스 는 도심에서도 보이는 아주 밝은 별입니다. 물론 이 별들은 제각각 속한 별자리가 있으니 찾아보죠. 이정도만 되도 당당히 천체 관측이 취미라고 할 만 합니다. 그 다음에 좋은 망원경 타령을 하든 사진 타령을 하든 해보면 어떨까요.
요약:
1. 맨눈으로 밤하늘을 보자. 보이는 별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는가?
2. 별자리를 익히자. 천문 앱은 꺼두고 별자리판을 마련하자. 별자리 너댓개 찾을 수 있는가?
3. 망원경을 이해하자. 아주 눈꼽 만큼의 하늘이 보인다는 것을 이해하는가?
4. 쌍안경을 사자. 뭔가 뿌연 것들이 보이나?
5. 망원경을 사기위해 저축을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얼마나 모아야 할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