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2년 6월, 기우 ......
월초만 해도 가뭄이라며 걱정이 태산이더니 월말에 들어 장맛비가 내렸습니다. 가뭄걱정이 단 보름도 못가 폭우 걱정을 하는 모습이 우습습니다. 딱히 무슨 농사라고 할 것도 없는데 매일 날씨를 살피고 걱정을 합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라고 한다지요. 이 고사성어의 출처를 보니 [https://namu.wiki/w/%EA%B8%B0%EC%9A%B0],
시골살이에 날씨가 중요하긴 합니다. 시골의 집 주변으로 배수 시설이 도시만 하진 않아서 행여 물이 고일까 염려스러워 비가 많이 내리면 비옷 입고 삽들고 집주변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대개는 우려할 만한 곳은 없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면 은근히 기분 좋습니다. 지붕을 때리고 처마로 흐르는 빗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요. 이럴 땐 파전에 막걸리가 아주 제맛이기도 하구요. 하지를 지났으니 텃밭에 감자를 캐서 파전 대신 감자전을 부쳐 먹습니다.유래는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으로, 고대 중국 기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이야기에서 나왔다. 결국 다른 사람이 하늘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해와 달, 별이 떨어지지 않고 땅 역시 기운이 뭉쳐져 있어 꺼지지 않는다는 걸 설명하자 비로소 크게 안심했다.
오이와 호박이 달리기 시작 했구요. 방금 딴 오이의 시원한 맛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군요. 작년 늦가을에 심었던 마늘을 뽑고, 씨뿌려 나온 당근 그리고 고추도 달리기 시작 했습니다. 올해 매실은 실하지 않아서 씨를 발라내고 장아찌를 담그기로 합니다.
상추, 치커리 등등 씨뿌린 모듬 쌈채소도 잎이 올라와서 샐러드로 아침을 채웁니다. 겨자채 같은 향이 있는 채소를 좋아하는데 텃밭에서는 잘 안돼더군요. 마트에서 일부 모자란 채소를 사다 먹습니다. 마당에서 딴 딸기로 잼을 만들었고, 우유와 요구르트로 만든 치즈를 얹습니다. 마당 한켠에 숨어있던 산딸기와 블루베리가 가난한 전원 생활자의 아침상에 식욕을 더해 줍니다.
마당의 꽃들도 여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봄꽃들의 화려함은 지고 수수함이 머뭅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면 날도 덥고 습하니 시골생활의 지루함이 더해지죠. 늘어지지 않으려고 일주일에 서너번은 도서관에 갑니다. 지지난 주에 사무실에 갔다가 결단을 했습니다. 사업이 제대로 서질 않는다는 소릴 하길래 눈치가 보이더군요. 안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가는 거지만 그만 두겠다고 했습니다. 조만간 확실한(?) '백수'가 될 듯 합니다. 막상 그렇게 되니 갑자기 맘이 짠 하더군요. 끈 떨어진 기분 이랄까.... 그런다고 지금의 생활이 달라질 것은 없는데 괜한 걱정도 들구요. '기우'에 그치길 바래 봅니다. 얼마전에 이웃분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회사를 그만 뒀다는 이야길 했더니 '젊은데 더 일해야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네 선배님들로부터 물려받은 '놀면 죄악'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탓일 겁니다.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재미를 보자며 도서관 출근길에 이런저런 취미를 함께하는 작은 모임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모임?'에 이르러서는 딱히 이거다 싶은게 없군요. 내 생각만 한다면 영어를 비롯해 수학, 물리, 천문 등등 공부하고 토론하기, 아마추어 무선(HAM, 햄), 전자공작, 핀홀 카메라, 목공, 종이공작, 비행 시뮬레이션 같은 만들기와 놀이, 가끔씩 작은 음악회, 수제맥주와 와인을 곁들인 포트럭 파티도 좋구요.
공부모임 장소는 지자체 시설을 주선해 준다 하니(지자체 도서관 마다 독서모임 신청을 하면 장소를 내준다고 합니다) 그것을 이용하고 작은 파티는 전원 생활자들이라 크게 염려스럽진 않을 겁니다. 술은 맥주 한두 캔으로 줄이고 먹을 것은 각자 조금씩 싸오면 되겠구요. 텃밭의 채소로 샐러드만 해도 충분 하니까요.
손님으로 방문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서로 부담이 아닐 수 없죠. 동네에 작은 공터가 있어서 예전에는 모여서 족구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했다는데 몇년 만에 명맥이 끊어 졌다 하더군요. 그 공터에 컨테이너라도 갖다 놓으면 무전실 설치나 비행 시뮬레이션 장비 설치도 가능 하겠다 싶습니다. 시설 설치나 비용, 그리고 강사(?) 조달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무슨 공약같은 말투?).
그런데 막상 입이 떨어지질 않네요. 가장 큰 걱정은 잘난척 하는게 아닐까? 나대는거 아냐? 라는 자기검열이구요, 그 다음은 과연 관심을 가져줄까 싶고, 이런 모임 만들었다가 끝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구요. 말을 꺼내는 것은 용기를 내면 되겠지만 어떤 모임을 할까? 라는데 망설임이 머뭅니다. 몇년 시골 살이를 해보며 이웃들을 사귀어 보니 서로들 너무나 살아온 이력이 다르고 관심사항들이 동떨어져서 여전히 입도 못떼고 있습니다.
으쌰으쌰 해서 뭘 해볼게 아니라 그냥 혼자 장소를 마련하고 설치하고 놀다보면 구경삼아 오셨다가 관심 갖고 들러서 같이 놀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권해서 될 일은 아닌가 봅니다. 결국 장소가 걸리네요. 혼자 마을공터를 아무일 없다는 듯이 시설을 가져다 놓고 사용하기도 곤란합니다. 전기와 수도시설이 필수 일텐데 맘대로 끌어올 수도 없겠구요. 그렇다고 사적 공간인 집을 자유로이 방문하고 모이기는 방문하는 쪽이나 맞이하는 쪽 모두 어렵습니다. 이럴때 임대할 수 있는 마을 공동시설(아파트 단지상가 처럼 커뮤니티 센터 같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에 한해의 반을 넘기고 있군요. 하루하루는 느린데 한달 두달은 너무 빠릅니다.
날씨가 더우니 고양이들도 나무그늘을 찾는군요. 더위에 지치지 말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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