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0월 06, 2018

'랩 걸'을 읽고 나니 누군가의 연구 조수가 되어 주고 싶어 졌다.

'랩 걸'을 읽고 나니 누군가의 연구 조수가 되어 주고 싶어 졌다.

이 책의 평이 아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식물에 관한 이야기 인줄 알았고 한글 서평에 여성 과학자의 분투기 쯤으로 소개 되어서 선뜻 집어들진 못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랩 걸(Lab Girl)'을 읽고 난 지금 기억에 남은 책이 되었다.

지구 환경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고 식물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 까닭은 일주일의 절반을 텃밭 짖기에 시간을 보내는 요즘 나의 생활 탓이리라. 게다가 박사학위를 받고 독자적인 실험실을 꾸리고 연구자로서 자립하는 과정에서 겪은 특히 재정적 어려움을 읽으면서 예전의 연구실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대학원 시절, 공공 연구자금을 받기 위한 제안서와 발표자료 준비하기 위해 밤을 새기도 했다. 기관의 눈에 들도록 억지스럽다 싶을 성과목표도 끼워 넣었다. 우리의 전공에 딱 맞지 않았지만 자금의 목표에 부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자금의 일부라도 받아야 용돈이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치열 했다. 결과 보고서에 맞추기 위한 작업 틈틈이 내 연구를 하지만 결국 억지스러웠던 목표에 맞춰야 했다. 짜증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이웃 분야를 곁눈질 할 수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삼았다. 과제가 끝나고 나면 안목이 조금 넓혀 졌다고 위안이 되지만 또 엉뚱한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

'랩걸'의 저자도 이런 류의 짜증을 잘 견딘 모양이다. 다행히 어려운 재정적 시기를 견디며 삼십여년간 실험실 조수가 되어준 동료(남성)가 있었고 애정어린 지원을 해준 지도교수가 있었다. 은퇴를 맞이하여 다른 학교에 재직하는 제자 임에도 자신의 낡은 실험실 장비를 모두 물려주고 학계에 이름을 들일 수 있도록 소개해 주었다. 연구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분위기 탓이리라.

이번에 읽은 번역서(알마출판사)의 뒷표지에 서평을 쓴이 (아마도 여성 과학자인 모양이다)는 여성 과학자로서 '불공정한 편견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글쎄다. 이 책의 저자는 여성으로서 받아야 했던 편견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결혼과 출산에서 겪는 여성으로서 '불리함'을 용감하게 극복한다. 그녀 곁에 현명한 남편(재능있는 수학자다), 헌신적인 연구 조수 그리고 애정어린 지원을 해준 지도교수가 있었다. 게다가 교수였던 아버지의 과학 실험실을 드나들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큰 행운이 부러웠다. 물론 그녀에게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 했을 행운이다. 이 책은 신진 과학자로서 독자적인 실험실을 꾸리고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내는 한 연구자의 감동적인 성장기다.

내 재능 부족 때문이겠지만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던 것을 속상 해 하며 이제 누군가의 연구 조수가 되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능은 없지만 손재주는 자신있다. 더구나 먹고 사는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니 비용도 싸게 먹힌단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단지 체력과 집중력이 좀 떨어진 나이가 되었지만 더 나빠지기전에 '연구 열정'을 불살라 보고 싶어 졌다.

'재주꾼'의 시선을 끈 기사가 있어서 소개한다.

'라디오 쉑' 부품으로 세계적 수준의 실험실을 꾸밀 수 있을까?
How two determined scientists built a world-class lab out of Radio Shack parts

'랩걸'의 저자는 처음 학계에 나온 무명의 신진 과학자로서 독자적인 실험실을 꾸며야 했다. 제정적 지원이 없어 창고에서 남이 쓰던 기구들을 모은다. 심지어 타 과, 타 학교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식물학 실험실에도 생태환경을 조절 하려면 습도와 온도를 조절을 위한 전자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비록 모양은 안나지만 창의적 손재주만 있다면 충분하다. 돈이 없는 그녀가 창의적 조수와 함께 취미가의 전자 부품점 '라디오 쉑'에서 전자장치를 구해다 첨단 실험실을 꾸몄다. 다행히 취미가들의 전자부품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현대 전자 산업 (특히 반도체)은 취미가를 위해 전자부품을 따로 만들진 않는다. 이 또한 저자가 누린 행운일 것이다.

[참고]
1. 호프 자런의 연구실 홈페이지, http://jahrenlab.com/
2. SXFM 소라소리, '랩걸'
3. 인터뷰,




4. How two determined scientists built a world-class lab out of Radio Shack parts

https://arstechnica.com/science/2016/05/how-two-determined-scientists-built-a-world-class-lab-out-of-radio-shack-p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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