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2년 3월, happiness(행복)의 동의어는 satisfaction(만족)
3월들어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영남지방에 큰 불이 있어서 비를 기다렸는데 제때에 내리질 않아서 진화에 큰 도움은 못되었다 하더군요. 70년대 산림녹화 덕에 강산이 푸르럿다 지만 무단통치 시절이라 무조건 나무심기에 급급했고 그나마 임도조차 관리가 안되어 진화에 큰 어려움이 있다 하네요. 집 주변에 야트막한 동산의 능선을 따라 임도가 나있긴 한데 너무 우거진 탓에 막상 들어가려니 겁이 납니다. 동네 분들이 산에가서 버섯도 따오고 나물도 캤다는 이야길 들으면 그저 부러울 따름 입니다. 귀촌 하면서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연과 벗삼아' 일텐데 아직 도시의 겁쟁이 티를 벗으려면 멀었군요.
겨울이 그냥가기 아쉬웠던지 올 3월도 예외없이 함박눈을 내려주고 갑니다. 작년에도 그리고 재작년에도 3월에 눈이 내렸었지요. 눈이 그칠세라 아침으로 냉큼 컵라면을 준비해 마당의 파고라에 나갔습니다. 갓 볶은 콩을 갈아 내린 커피를 마시며 봄 설경을 즐깁니다.
제아무리 겨울의 뒷끝이 있다지만 봄기운을 이길 순 없습니다. 제일 먼저 얼굴을 내밀었던 크로커스는 눈발 속에서도 의연하네요. 중순을 넘어가자 연일 낮기온이 십여도를 넘게 오르고 꽃눈들이 살아 나옵니다.
보라색 크로커스, 목단, 팬지
튤립과 수선화는 며칠 후면 꽃을 피울 기세 입니다.
아랫마을에는 산수유 꽃이 제법 만개 했던데 우리집 마당의 산수유는 이제야 눈을 뜨고 있네요. 집이 약간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온도차가 조금 나는가 봅니다. 아주 작은 기온차이에도 식물이 자라는 모습에 차이가 나는걸 보면 자연의 섬세함이 놀랍군요. 지구 온난화에 많은 걱정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렇게 섬세한 자연을 잘 지켜 나가야 할텐데요.
산수유, 명자나무
매화, 라일락
돌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돌단풍과 앵초를 보니 여지없이 봄입니다.
할미꽃과 작약
경칩이 지났다고 빗물 받아둔 그릇에 개구리가 나타나 헤엄을 치고 있네요. 고양이 녀석들이 물어다 놀까봐 얼른 풀어 줬네요. 아침이면 새들이 짝을 찾는지 지저귀기 시작 했습니다. 봄날 아침의 상쾌한 공기과 더불어 귀도 즐겁게 해주는 새들을 위해 모이대를 만들어 줬더니 곤줄박이, 박새, 물까치 들이 날아와 먹고 갑니다. 얘네들이 먹는 땅콩도 제법 들어가네요.
지난 가을 묻어둔 마늘쪽이 백여개 됐더랬습니다. 겨우내 덮어 두었던 비닐을 걷어주니 마늘 싹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 옵니다. 미리 씨앗을 뿌려 뒀던 상추와 시금치도 싹이 올라왔습니다.
이웃에서 봄꽃을 사오면서 히야신스를 나눠 주셨습니다. 창가에 뒀더니 만개했네요. 히야신스 두송이에서 품어져 나오는 향기가 온 집안 가득합니다. 화학성분 가득한 방향제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지난달에 뉴질랜드의 ZL1HJ Mick 씨로부터 받은 아마추어 무선 교신 증명 카드(QSL Card)에 회신을 못해서 전자우편을 보냈더니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올해로 78세로 손주 손녀들을 둔 다복한 할아버지 햄 이시라고 합니다. 요즘은 단파대 하이밴드에서 해외 원거리 신호들이 제법 들어오고 있어서 덩달아 취침 시간이 자정을 넘기곤 하네요.
농한기 동안 한대 정도 종이공작품을 만들려고 했는데 한대 더 만들게 됐습니다. 3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 실망하여 마음을 달래려고 다른 집중할 곳을 찾다보니 그리 되었군요. 이번달 내내 만든 만든 작품은 P-51 머스탱 입니다.
2차대전 때 B-17 폭격기의 호위 업무를 수행해서 명성을 떨쳤고 한국전쟁에서도 제 역할을 했다는 비행기 입니다.
'취미'는 시골생활을 무료함을 달래는데 아주 유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이들어 가면서 심신을 다독이는데 꼭 필요한 요소일 겁니다. 티브이 프로그램으로 방영 됐던 세 할머니의 시골살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탓에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가 열리지 못하니 소규모 '취미' 활동을 자체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니 행복해 보였습니다.
행복한 삶이란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잔뜩 찌푸린 채 '불만족'을 늘어 놓으면 '불행복' 할게 뻔하잖아요. 그나저나 '할머니' 모임이 대부분인데 '할아버지' 취미모임은 없는 걸까요? 다들 잘났고 소싯적 한가닥씩 해봤으니 자존심이 세서 모이기만 하면 우격다짐이 다반사라 그렇다 하는 이야길 듣습니다. 그렇다고 소파에 누워 티브이 리모콘 누르기로 전락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임도를 따라 걷다가 하늘이 탁 트인 곳을 발견 했습니다. 별보기에 만족스런 장소입니다. 별보기는 저의 또다른 취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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