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4년 1월, 40년 묵은 체증
올해는 2020년에 집을 넓히고 양평군민이 되면서 시작된 귀촌생활도 어느덧 5년차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귀촌살이는 5년이면 슬슬 더 머물지 떠날지 결판 난다고 합니다. 작년에 우연찮게 시작된 학교일 때문인지 시골살이 같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끔 밤샘도 불사하고 있구요. 업무에 쫒기는 류의 압박은 아니라 다행이긴 합니다. 책상에 앉아 하는 짓은 같지만 이유가 다릅니다.
처음 컴퓨터를 만져본 때가 1983년 이니까 딱 40년 전이군요. 어느날 어머니께서 친정에 다녀 오시면서 보자기에 싼 뭔가를 들고 오셨는데 애플2 였습니다. 모니터도 없이 본체만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오셨더군요. 뉴스에 가끔 신문물로 소개되던 물건이라 막 대학에 들어간 아들 생각이 나셨던 모양입니다. 그 신문물을 소유하셨던 분은 종교계였고 물려받게된 나는 물리학도 였습니다. 말그대로 느닷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찢어진 커튼"이라는 히치코크 감독의 첩보영화에서 물리학자들 끼리 칠판위에서 토론하는 장면이 멋져 보였고 예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환상에 빠져 막 물리학도가 되었던 '소년'의 관심은 전자계산기라는 물건으로 옮겨가 버렸습니다. 쥴리 앤드류스가 탐났지만 내가 폴 뉴먼 급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탓이 클겁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컴퓨터 사랑은 전자공학으로 옮겨 갔고 부전공으로 수강하게 됐습니다. 논리회로 설계, 컴퓨터 구조, 마이크로프로세서 등등 처음 듣는 과목들이 흥미로웠지만 갑갑함이 쌓였습니다.
물리학과 전공선택 과목으로 전산개론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공계용 전산이라면서 포트란을 가르쳤죠. 그런데 학교에는 정작 실습해 볼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전산실은 있었지만 이과계 학생들에게는 개방될 만큼 여유가 없었던 겁니다. 담당과목 교수가 외래 강사였던 탓에 이런 사정을 몰랐던지 프로그램 과제를 내줬고 할 수 없이 다른 학교 전산실이 개방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억지로 부탁해가며 코딩 숙제를 제출 했었습니다. 집에 있던 Apple ][는 BASIC 이라는 것만 돌릴 수 있어서 과학가술용으로는 쓸모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부조화가 또 없었지요.
부전공으로 마이크로 프로세서라는 과목을 수강했고 어셈블리 언어라는 것을 수강 했습니다. 전자공학과에 실습할 컴퓨터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습니다. 아니면 타과 학생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을까요? 2년째 게임기로 잘 쓰고 있던 에플2에 CP/M 카드라는 것을 끼워 학교에서 배운 Z-80 마이크로 컨트롤러의 어셈블리 언어 실습을 할 수 있었지요. 과제는 그것으로 겨우 수행 할 수 있었습니다. 대략 컴퓨터가 돌아가는 원리를 어렴풋 하게나마 느끼기 시작 했는데 이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라고 할만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컴퓨터 관련 잡지를 읽었지만 무슨 말인지 절반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윈도우즈를 두고 운영체제 전쟁이라는 기사가 참 많이 나오던 시절이었죠. 유닉스와 함께 C 언어가 세상을 바꿀거라는 이야길 보고는 C 컴파일러를 어떻게 한번 써보겠다고 수소문 해봤지만 그게 뭐냐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묵직한 체끼만을 남긴채 그렇게 나의 애플2는 게임기로 끝났습니다.
그후 어찌어찌 하여 컴퓨터를 사용하며 40년이 흘렀군요. 컴퓨터와 반도체에 관한한 척보면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자부하게 됐지만 체끼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더 날밤 새다가는 제 명에 못죽겠다 싶어 다 그만 두고 시골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우연히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반도체 설계를 가르쳐 달라기에 예제로 쓸만한 베릴로그 설계를 둘러보다가 6502를 찾았습니다. Apple 컴퓨터의 그 6502 맞습니다! Z80도, 8051도! 6502의 베릴로그와 C++를 합쳐서 시뮬레이터를 만들어서 Apple-1의 워즈니악 모니터를 얹었더니 잘 도는군요. C 컴파일러도 찾았습니다. 더 찾아보니 그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Z80, 8051 마이크로 프로세서들의 베릴로그 소스들이 모두 오픈-소스로 개발되고 공개되어 있네요. 모두 모아서 시뮬레이터로 돌려보고 개발 도구들도 모아서 맞춰 놓느라 몇일 밤을 샜습니다. 밤샘하면 제명을 못누릴것 같았는데 오히려 체끼가 쑥 내려가네요.
그렇게 책상에 물려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몇달을 지냈습니다. 문득 도시의 아파트 생활과 다를까? 다시 도시로 갈까? 4년이면 시골생활 해볼만큼 한거 아냐?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네요. 앞으로 스무해는 더 살아야 하는데 겨우 일꺼리 좀 맡았다고 방정이다 싶기도 하구요. 밤샌날 아침 아파트 베란다의 어스름한 창밖에서 들리는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동트는 마당에 서서 듣는 새들의 지저귐만 할까요?
바깥 활동이 적은 겨울이라 뭔가 해먹을 궁리가 많습니다. 외식과 배달이 수월한 도시에 살았더라면 식단 걱정이며 먹고난 설겆이 꺼리며 귀찮아 할게 없었겠지요?
메뉴 개발도 못했을 것이구요. 토마토와 가지가 들어간 명란 파스타
긴 겨울밤 간식으로 곶감 대신 뭘 먹었을까요?
요런 귀여운 녀석들이 곁에 없었겠지요.
생각이 깊어지는 중에도 겨울이 지나가려나 봅니다. 수선화 싹이 올라오고 있어요.
이렇게 또 한해 더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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