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1월 12, 2023

[양평집] 2023년 10월, 가을이 어디로 갔지?

[양평집] 2023년 10월, 가을이 어디로 갔지?

어쩌다 선생 노릇 하느라 가을이 간줄 몰랐습니다. 학생들에게 반도체 설계를 가르치면서 제작까지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더랬습니다. 사실 반도체 제작까지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상용 제품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므로 그리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은 반도체 설계도 오픈 소스 추세에 설계용 소프트웨어들도 공개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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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연구소(ETRI)와 대학(ISRC, DGIST)에 소재한 반도체 공정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반도체 설계물을 제작해 준다기에 신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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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풀 커스텀 방식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오픈-소스 설계도구인 합성기(Yosys/RTL Synthesizer)와 자동배치(GrayWolf/Auto-Placer) 및 배선기(QRouter/Auto-Router)를 시험해 보고 싶은데 표준 셀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말인 즉슨, 반도체 설계 과정의 최상위 과정에서 맨 밑바닥까지, 게다가 오픈 소스 도구들을 사용해서 설계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홀로 세운 계획입니다. 누가 시켜서 했다던가 과제를 맡았다면 거절 했을 겁니다. 시골사는 촌부에게 반도체 제작기회를 준다니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을 해준다는 측과 논의 하면서 다소 무리한 요청을 하며 이런저런 의욕을 보였더니 반가워 하네요. 우연히 맡은 '대학교수' 직함의 위력이 이런 거구나 합니다. 만일 촌부의 부탁이었다면 콧방귀도 안뀌었겠지요.

  

  

도면을 그리고 이를 반도체 설계 자동화 도구들에 연동되는 표준 셀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실험실 반도체 공정이라 제약도 상당한데다 오픈 소스 도구들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요. 그러느라 가을이 가는줄도 몰랐네요. 다시는 철야 안할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두어번 밤을 새기도 했구요.

그렇다고 아예 가을을 지나친 것은 아니구요. 어느 화창한 날엔 꽃을 꼽고 가을 들판에 나가기도 했구요. 단호박 식혜와 밤을 주워다 약식도 해먹었습니다.

 

그러다 브라우니를 만들다 실패해서 초코 부침개가 되기도 했지만 초코칩 쿠키는 그럴듯 합니다.

 

봄에 마당에서 따서 냉동고에 두었던 딸기, 블루베리, 블랙 커런트를 꺼내 잼을 만들어 두었구요. 조카들에게 한병씩 나눠줄 요량입니다.

 

날씨가 선선해 지니 여름 더위에 멀리했던 불기를 찾아 요리를 시작 합니다. 그래봐야 등갈비 묵은지 찜이나 배추전골 정도지요. 갖가지 야채를 넣은 파스타는 저의 시그니처가 되었기에 두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마당은 가을을 맞아 구절초와 국화류가 가득 입니다. 국화 향기에 취해 밤샘의 피로가 가시는 군요. 올해 환갑을 맞이 했습니다만 연일 밤샘에도 끄덕 없습니다.

  

  

  

몇일 쌀쌀해 지더니 마침내 서리가 하얗게 내렸습니다.

 

요녀석들은 어디서 뒹굴다 들어왔는지 턱밑이 시커매져서 들어와서는 팔자좋게 주무십니다.

 

풀씨를 잔뜩 뭍히고 와서는 간식달라며....

 

매월 월말이면 쓰던 월기를 중순이 다되서야 부랴부랴 쓰는군요. 그렇게 가을이 가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