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9월 03, 2021

양평집 2021년 8월, 망설이는 사람들

양평집 2021년 8월, 망설이는 사람들

8월의 한 낮은 여름의 본맛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연일 35도를 육박했고 연일 열대야에 잠들기 어렵게 했습니다. 하순께 태풍 영향을 받아 연일 비가 내렸구요. 어쩐지 지난달 장마가 싱겁게 지나갔다 싶었습니다. 에어컨을 하루 열시간 이상 틀어 댔더니 전기 검침원이 이번달에는 많이 썼다고 하시네요. 지난 달에도 만만치 않게 전기료가 5만원 가까이 나왔는데 이번달에는 두배쯤 나오려나 봅니다. 도시 아파트 생활을 되짚어 보면 에어컨 튼 날이 일주일 남짓 했던 것을 보면 확실히 땅딛고 사는 생활에 전기를 많이 쓰네요. 기온도 그렇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과 습기 탓 이겠지요. 벌레에 별로 신경을 안쓰다가 나방, 모기 같은 해충들이 귀찮기도 하구요. 시골 살이가 좋은 것 만은 아니죠.

코로나-19 재택근무에 지친 탓인지 야외로 나왔다가 시골살이에 관심을 갖게된 사람들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초 까지만 해도 물어보거나 찾아오는 지인들이 여럿 됐었습니다. 그땐 나도 초짜면서 시골 살이의 장점을 침이 마를세라 열변을 토했더랬습니다. 요즘도 그 때 그분들이 종종 물어 오곤합니다. 다른 점 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고 물어 온다는 겁니다. 방송이나 유튜브에 시골살이에 대한 아주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 일 겁니다. 특히 단점 이야기에 조회수가 엄청 올라 가더군요. 아마도 망설이는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여 질 땐 안사는 게 현명 하다지요. 귀촌도 망설여지면 안 오는게 좋다고 말해 줍니다.

솔직히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전기료와 난방비 많이 들어간다. 단열 잘된 집 찾기도 어렵고 짓기는 더욱 어렵다. 계곡물이 흐르고 그늘진 시원한 마당에 나서면 멋진 풍광을 맞이 할 수 있는 그런곳 남아 있지 않다. 설사 운좋게 그런 곳에 살게 됐더라도 일년 내내 좋기만 하겠냐? 땀을 비오듯 흘려야 그나마 푸성귀라도 뜯어 먹는다. 그러고 나면 마당에서 고기굽고 뭐하고 그런거 없다. 힘들고 치울일 걱정되서 일년에 몇번도 안한다. 방송에 목가적인 화면이 나오면 저 사람들 뭐먹고 사나 싶은 생각이 앞선다. 겉으로는 말을 안해도 시골살이는 할일도 없고 정말 심심하다. 이렇게 말해주면 대개 되돌아 오는 답은 이렇습니다. "나도 다 알아 봤어." 라며 언성을 높이기 마련이죠. 아마도 미련이 남아있는데 말리니까 자존심도 상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나름 계획이 있다며 굳은 의지를 표명합니다. 근데 왜 물어 볼까요? 시골살이 갔다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다 피하고 세웠다는 계획을 들어 보면 황당합니다. 마당에 공구리 치고 밭일 안하고 유람이나 다닐라면 뭐하러 시골에 와? 그냥 도시 녹지 조성 잘된 아파트로 가라고 해줍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사회수준이 높아져서 병원도 가깝고 백화점, 문화시설에  근린 공원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그런데 너는 왜 시골에 살지?" 그러면 떠나고 싶은데 시골 땅은 싸게 내놔도 안팔려서 별수 없노라며 회심의 일격(?)을 날려 줍니다. 이렇게 비참(?)했던 8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겨우 모종 몇 줄기 심었더니 감당할 수 없게 열리지 뭡니까. 대충 풀만 뽑아줬는데 다행히 비도 제때 내리고 햇볕이 좋았던지 채소가 제법 달렸군요.

시골에 오면 남녀 유별은 개나 줘버려야 합니다. 밥때 마다 어디 나가서 사먹을 수 없으니 불쌍하게도 남자도 요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행히 유튜브 요리 채널이 살려 줍니다. 백종원씨 덕에 늙으면 곰탕 끓이는 마누라 무섭지 않죠. 나갈테면 나가라지 하며 그깟 밥 쯤이야!

가지 밥을 해봤습니다. 계란 후라이는 일도 아니죠.

 

아직도 남아 있는 가지는 볶기도하고, 토마토와 치즈 그리고 직접 구운 쿠키로 때우는 아침. 시골에 오니 얼마나 심심했던지 요리에 제빵 까지 하고 앉았네요.

  

시원찮은 농사라 토마토가 죄 터졌길래 스튜로 해 먹습니다. 이것 저것 남은 푸성귀에 계란지단을 얹은 비빔밥. 누가 그러던가요? 계란지단 어렵다고?

  

몇일 비가 오고 났더니 토마토 줄기가 녹아 버렸습니다. 그 대신 포도가 주렁~

 

한때 인기를 끌더니 지금은 따가래도 안따 간다는 아로니아,

 

빨간 고추를 따긴 했는데 저걸로 김장을 담그기엔 턱도 없겠지요. 그래도 배추는 야무지게 심어 봤습니다. 겨우 열댓평 되는 밭을 갈려고 해도 허리가 아프죠. 이럴라고 시골 왔나 싶을땐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작은 관리기지만 스무평 농사에는 아주 유용합니다.

 

장마비에 화단은 엉망이고 풀만 무성하네요. 이걸 언제 다 뽑나 싶다가도...

 

사이사이 핀 수국과 메리골드를 보며 힘을 내 봅니다.

 

조만간 필 큰꿩의비름과 구절초며 국화를 기대하구요.

 

너무나 심심하여 방송대 4과목, K-MOOC 3과목, Coursera 2과목 그리고 마져 읽어야 하는 The Great Gatsby, 옛추억 되살려 High-Level Synthesis 까지 손을 대놨는데 욕심이 과한것은 아닐지요.

마당에 반딧불이 한두마리 날아 오르고 비갠 청명한 하늘입니다. 천고마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코앞입니다. 망설이며 물어보던 자기님들은 울고 싶은데 뺨때려 줬다는 격으로 망설이던 참에 잘 말려줬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2개:

  1. 꽃도 보고 식물도 직접 재배해서 요리해 먹는 게 참 그림 같지만 실지로 시골 생활은 녹록지많은 않나 보네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기도 하고 계속 할 밭일 논일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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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뿌려놓은 씨앗이 발아하고 심어놓은 모종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재미있기는 합니다. 그러저런 일이 할땐 힘들어도 없으면 심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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