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2021년 12월, 크리스마스 손님
12월.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한 해를 뒤돌아 보았노라며 한마디 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는 없습니다만 귀촌은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사내 녀석이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이야길 듣고 성장 했습니다만 어느덧 조리할 수 있는 메뉴가 십여가지는 되나 봅니다. 어디 내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맨밥에 배곯지 않을 만큼은 됩니다. 마트에 가서 쌈채소를 고르고, 우유의 유효기간을 살피고, 정육점 앞에서 고기를 썰어 달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신선한 야채 샐러드에 요구르트와 드레싱을 뿌려 먹거나,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에 역시 직접 만든 호밀빵에 발라먹기도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침은 모닝 커피 한잔이 세련된 건줄 알았지만 참 멍청한 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림질한 남방에 구두를 신는 것이 최소 차림 인줄 알았다가 지금은 무릎 나온 추리닝에 흙묻은 작업화 차림으로 읍내에 나가도 아무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나이를 먹어 뻔뻔해진 탓도 있겠지만 자연에 동화(?)된 탓은 아닐런지요. 귀촌 생활의 변화중 가장 큰 장점이라면 생활이 소박해지고 경쟁에서 편안해 졌다는 점을 가장 내세우고 싶군요. 아직 누가 잘나간다더라... 누구는 연봉이 어떻다더라... 그런 얘길 듣게 되면 약간은 부러운 마음이 있긴 합니다만 이내 `그렇구나` 하게 됐습니다.
광파 오븐이라는 물건을 새로 들였습니다. 고기 굽고 생선을 구우니 실내에 냄새가 오래 가서 그동안 쓰던 열선식 전기오븐은 밖으로 내놨습니다. 시골 산다고 마당에서 맨날 숫불 피우는거 아닙니다. 마당에서 장작불 놀이는 연중 행사죠. 광파 오븐은 전자 렌지 겸용인데 역시 신문물은 좋군요. 파운드 케익을 구워 이웃에게 나눠 드렸더니 과일이며 계란 등등을 주셨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산바람 씽씽부는 시골의 겨울은 역시나 춥군요. 마당은 이미 갈색으로 변했고 장독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갑니다. 냉장고 냉동실 기온보다도 낮습니다.
노지 월동이 안되는 화초 몇개는 화분에 담아 부엌 창가에 두었더니 꽃을 피워 주기도 합니다. 잘라먹은 미나리에서도 싹이 올라와요. 그나저나 저게 언제 자라서 부침개 꺼리라도 될려는지.
김장 배추를 뽑은 자리에 월동 채소 씨앗을 조금 뿌려 놓고는 비닐을 씌웠더니 싹이 올라 오네요. 봄에 뜯어먹을 수는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며 EBS 라디오 방송을 듣습니다. 9시의 프로그램은 '최수진의 모닝 스페셜' 인데 외국 신문 기사를 읽어 줍니다. 해외 소식을 원어민이 읽어주고 이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합니다. 이날은 주 4일제 실험이라는 뉴욕 타임스 기사를 해설해 주더군요.
Is the Four-Day Workweek Finally Within Our Grasp? [원문링크] [EBS 오디오 링크]
After embracing flexible work styles during the pandemic, some companies are now embracing a shorter week.
주 4일제가 가시권에?
판데믹으로 자율 근무제가 낮설지 않게 되자 몇몇 회사들에서 주간 일하는 날자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는 기사 입니다. 대체로 장점이 많아 시행 기간을 연장 하고 있다는데 능률이 높아졌고 무엇보다도 월요일 아침 직장 분위기가 활기차 졌다는 군요. 단점이라면 끼리끼리 문화라네요. 친한 동료끼리는 더욱 돈독해 졌으나 싫어하는 동료 사이는 더 벌어 진다는 군요.
우리도 주 5일제를 시행하면서 이런 저런 변화를 체감 하게 됐죠. 그중 가족 야외 활동이 늘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놀러 다니는 것에 더해서 시골에 주말 주택을 마련하는 경우나 귀농귀촌 인구가 늘었다는 통계[링크]도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틀 휴무로 갈 수 있는 곳의 거리가 짧기 마련입니다.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쓰니 빠듯한 일정이 되겠구요.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적어도 하루는 온전히 쉬면서 지낼 수 있으니 거리 범위도 넓어질 겁니다. 언재쯤 우리도 4일제 근무가 도입될지 모르지만 시골 주택 수요가 늘어나겠지요. 꼭 그래서 인지 몰라도 용문 읍내에 나가는 길의 언덕마다 하루가 다르게 택지 개발이 한창인 것을 봅니다. 이미 귀촌한 입장에서 이것을 반길 수만 없는 것이 너무 번잡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귀촌하면서 부동산 투자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주말에만 왔다가는 분들 중에는 무슨 펜션 놀러온듯 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서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주말주택의 문화도 잘 정착 되길 바래 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거니와 초등학교 이래로 교회에 가본적이 없어서 크리스마스는 그저 밤새 노는 날 쯤으로 생각 했더랬습니다. 그도 한창 때 였고 지금은 별로 감흥도 없어 졌습니다. 그래도 심심하니 촛불이라도 켜 봤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전날 마당에 새끼 고양이가 다리를 절며 나타 났습니다. 우리집 마당에서 터잡고 사는 녀석이 둘, 밥 때 나타나는 녀석이 서넛 쯤 됐는데 지난번 보니 새끼를 데리고 가끔 오는 녀석이 있었더랬지요. 그중 새끼 한마리 인가 봅니다. 오른쪽 뒷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뼈마디가 덜렁 거린채 마당을 배회 하더군요. 불쌍한 마음에 먹이를 조금 줬더니 졸졸 따라 오더군요. 그냥 둬선 아물지 않겠다 싶어 다음날 병원에 데려 갔더니 몇일 됐고 고름도 나온다고 해서 절단 수술 했습니다. 이틀 입원하고 집으로 데려 왔더니 잔뜩 겁을 먹었네요.
데려온 날 다른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문앞을 배회 하길래 할 수 없이 집안으로 데려 왔네요. 마을길을 택배차들이 너무 쎄게 달립니다. 아마 어미는 변을 당했는지 보이지 않고 새끼만 살았나 봅니다.
며칠 거실에서 지냈다고 기운을 차렸는지 애교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둘이 저렇게 서로 물고빨고 하다가도 서로 깨물고 달리고 합니다. 다친 애는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니 오래 살라고 '꼬북이'(절대 쁘걸의 멤버랑 무관함! ㅎㅎㅎ), 꼬리가 짧은 애는 '꼬리' 입니다.
초록이 사라진 마당은 황량해 보이지만 가끔 눈이라도 내려주면 사진으로나마 포근한 풍경을 보여 줍니다. 겨울해는 서쪽 능선으로 서둘러 내려가고 금방 어두워 집니다. 도시의 불빛이 휘황한 도시에 비해 시골의 겨울밤은 더욱 길기만 하죠. 겨울밤 무얼 하며 지내실까요?
올해도 잘먹고 잘놀았던 한해 였습니다. 코로나만 사라져 준다면 내년도 더 바랄게 없습니다. 아... 대선이 있는 해군요. 잘 뽑아야 겠습니다. 낡음은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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