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2월 31, 2021

[양평집]2021년 12월, 크리스마스 손님

 [양평집]2021년 12월, 크리스마스 손님

12월.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한 해를 뒤돌아 보았노라며 한마디 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는 없습니다만 귀촌은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사내 녀석이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이야길 듣고 성장 했습니다만 어느덧 조리할 수 있는 메뉴가 십여가지는 되나 봅니다. 어디 내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맨밥에 배곯지 않을 만큼은 됩니다. 마트에 가서 쌈채소를 고르고, 우유의 유효기간을 살피고, 정육점 앞에서 고기를 썰어 달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신선한 야채 샐러드에 요구르트와 드레싱을 뿌려 먹거나,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에 역시 직접 만든 호밀빵에 발라먹기도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침은 모닝 커피 한잔이 세련된 건줄 알았지만 참 멍청한 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림질한 남방에 구두를 신는 것이 최소 차림 인줄 알았다가 지금은 무릎 나온 추리닝에 흙묻은 작업화 차림으로 읍내에 나가도 아무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나이를 먹어 뻔뻔해진 탓도 있겠지만 자연에 동화(?)된 탓은 아닐런지요. 귀촌 생활의 변화중 가장 큰 장점이라면 생활이 소박해지고 경쟁에서 편안해 졌다는 점을 가장 내세우고 싶군요. 아직 누가 잘나간다더라... 누구는 연봉이 어떻다더라... 그런 얘길 듣게 되면 약간은 부러운 마음이 있긴 합니다만 이내 `그렇구나` 하게 됐습니다.

 

광파 오븐이라는 물건을 새로 들였습니다. 고기 굽고 생선을 구우니 실내에 냄새가 오래 가서 그동안 쓰던 열선식 전기오븐은 밖으로 내놨습니다. 시골 산다고 마당에서 맨날 숫불 피우는거 아닙니다. 마당에서 장작불 놀이는 연중 행사죠. 광파 오븐은 전자 렌지 겸용인데 역시 신문물은 좋군요. 파운드 케익을 구워 이웃에게 나눠 드렸더니 과일이며 계란 등등을 주셨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산바람 씽씽부는 시골의 겨울은 역시나 춥군요. 마당은 이미 갈색으로 변했고 장독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갑니다. 냉장고 냉동실 기온보다도 낮습니다.

 

노지 월동이 안되는 화초 몇개는 화분에 담아 부엌 창가에 두었더니 꽃을 피워 주기도 합니다. 잘라먹은 미나리에서도 싹이 올라와요. 그나저나 저게 언제 자라서 부침개 꺼리라도 될려는지.

 

김장 배추를 뽑은 자리에 월동 채소 씨앗을 조금 뿌려 놓고는 비닐을 씌웠더니 싹이 올라 오네요. 봄에 뜯어먹을 수는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며 EBS 라디오 방송을 듣습니다. 9시의 프로그램은 '최수진의 모닝 스페셜' 인데 외국 신문 기사를 읽어 줍니다. 해외 소식을 원어민이 읽어주고 이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합니다. 이날은 주 4일제 실험이라는 뉴욕 타임스 기사를 해설해 주더군요.

Is the Four-Day Workweek Finally Within Our Grasp? [원문링크] [EBS 오디오 링크]

After embracing flexible work styles during the pandemic, some companies are now embracing a shorter week.

주 4일제가 가시권에?

판데믹으로 자율 근무제가 낮설지 않게 되자 몇몇 회사들에서 주간 일하는 날자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는 기사 입니다. 대체로 장점이 많아 시행 기간을 연장 하고 있다는데 능률이 높아졌고 무엇보다도 월요일 아침 직장 분위기가 활기차 졌다는 군요. 단점이라면 끼리끼리 문화라네요. 친한 동료끼리는 더욱 돈독해 졌으나 싫어하는 동료 사이는 더 벌어 진다는 군요.

우리도 주 5일제를 시행하면서 이런 저런 변화를 체감 하게 됐죠. 그중 가족 야외 활동이 늘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놀러 다니는 것에 더해서 시골에 주말 주택을 마련하는 경우나 귀농귀촌 인구가 늘었다는 통계[링크]도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틀 휴무로 갈 수 있는 곳의 거리가 짧기 마련입니다.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쓰니 빠듯한 일정이 되겠구요.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적어도 하루는 온전히 쉬면서 지낼 수 있으니 거리 범위도 넓어질 겁니다. 언재쯤 우리도 4일제 근무가 도입될지 모르지만 시골 주택 수요가 늘어나겠지요. 꼭 그래서 인지 몰라도 용문 읍내에 나가는 길의 언덕마다 하루가 다르게 택지 개발이 한창인 것을 봅니다. 이미 귀촌한 입장에서 이것을 반길 수만 없는 것이 너무 번잡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귀촌하면서 부동산 투자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주말에만 왔다가는 분들 중에는 무슨 펜션 놀러온듯 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서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주말주택의 문화도 잘 정착 되길 바래 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거니와 초등학교 이래로 교회에 가본적이 없어서 크리스마스는 그저 밤새 노는 날 쯤으로 생각 했더랬습니다. 그도 한창 때 였고 지금은 별로 감흥도 없어 졌습니다. 그래도 심심하니 촛불이라도 켜 봤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전날 마당에 새끼 고양이가 다리를 절며 나타 났습니다. 우리집 마당에서 터잡고 사는 녀석이 둘, 밥 때 나타나는 녀석이 서넛 쯤 됐는데 지난번 보니 새끼를 데리고 가끔 오는 녀석이 있었더랬지요. 그중 새끼 한마리 인가 봅니다. 오른쪽 뒷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뼈마디가 덜렁 거린채 마당을 배회 하더군요. 불쌍한 마음에 먹이를 조금 줬더니 졸졸 따라 오더군요. 그냥 둬선 아물지 않겠다 싶어 다음날 병원에 데려 갔더니 몇일 됐고 고름도 나온다고 해서 절단 수술 했습니다. 이틀 입원하고 집으로 데려 왔더니 잔뜩 겁을 먹었네요. 

 

데려온 날 다른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문앞을 배회 하길래 할 수 없이 집안으로 데려 왔네요. 마을길을 택배차들이 너무 쎄게 달립니다. 아마 어미는 변을 당했는지 보이지 않고 새끼만 살았나 봅니다.

 

며칠 거실에서 지냈다고 기운을 차렸는지 애교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둘이 저렇게 서로 물고빨고 하다가도 서로 깨물고 달리고 합니다. 다친 애는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니 오래 살라고 '꼬북이'(절대 쁘걸의 멤버랑 무관함! ㅎㅎㅎ), 꼬리가 짧은 애는 '꼬리' 입니다.

 

초록이 사라진 마당은 황량해 보이지만 가끔 눈이라도 내려주면 사진으로나마 포근한 풍경을 보여 줍니다. 겨울해는 서쪽 능선으로 서둘러 내려가고 금방 어두워 집니다. 도시의 불빛이 휘황한 도시에 비해 시골의 겨울밤은 더욱 길기만 하죠. 겨울밤 무얼 하며 지내실까요?

  

올해도 잘먹고 잘놀았던 한해 였습니다. 코로나만 사라져 준다면 내년도 더 바랄게 없습니다. 아... 대선이 있는 해군요. 잘 뽑아야 겠습니다. 낡음은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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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1월 30, 2021

[양평집] 2021년 11월, 첫눈! 그리고 김장

[양평집] 2021년 11월, 첫눈! 그리고 김장

지난달 느닷없는 한파에 움찔 했는데 이달 입동은 웬걸 34년만의 따뜻한 입동 이랍니다. 그러다 다시 몇일만에 한파가 닥쳐서 마당에 내놓은 개수대 꼭지에 작은 고드름이 매달리더니 첫눈이 내렸습니다. 마당 고양이는 개도 아닌 것이 뭐가 내린다고 마당을 서성이네요. 아마 태어나서 맞는 첫눈이라 신기했었나 봅니다.

 

한파를 맞은 배추가 더이상 자랄것 같지 않은지 예년보다 한두 주 빠르게 이웃의 한두집 씩 김장을 담그고 있습니다. 우리집 텃밭은 8월 말에 배추 모종을 심었기에 조금 기다려 봤지만 더이상 미룰 수가 없겠더군요. 무우를 뽑아 봤는데 작년보다 알이 작았습니다.

  

배추도 속이 덜 찼지만 그래도 김장을 담궈 봤습니다. 한 열주 정도 심었던 고추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마당에서 말리고 방앗간에서 빻아왔더니 고춧가루가 1.2킬로그램이나 나왔다네요. 김장 담그기 충분 한 양입니다.  김장김치를 담그니 한 20키로그램은 되나 봅니다. 깍두기랑 하면 그럭저럭 겨울은 날 것 같네요. 배추속이 션찮더라도 할건 해야 겠지요. 김치 속에 돼지 수육을 싸먹어야 김장 좀 했네... 하는것 아니겠어요.

 

배추 속이 샛노란 것이 먹음직 합니다. 황금배추 품종이라 더 노랗다고 합니다. 모종 값도 일반 배추보다 조금 비쌌던 걸로 기억 합니다. 배추전에 배춧국을 더해 간단히 소주 일잔 했습니다.

첫눈 이라고 조금 쌓이더니 이내 녹아 버리고 살짝 따뜻한 틈을 타 봄꽃이 주책없이 나왔습니다. 명자나무 꽃.

 

제비꽃과 괭이밥

 

민들레와 개망초

 

촌 사람이 계절을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겁니다. 아침일찍 마당을 나설 때 들이 마시는 쌀쌀한 공기의 청량함, 오후 해가 어느 산봉우리로 떨어지는지 가늠해보고 밤하늘 별자리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앎니다.

 

이웃에서 나눠주시는 과수에서도, 산책 길에서 밟는 낙엽에서도..... 늘 다니던 산책길 이지만 초겨울을 맞는 풍경이 문득 새롭게 다가옵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게 아마 고교시절일 테니까 벌써 40년은 된 것 같네요. 맥스웰 하우스 가루커피에 이어서 맥심 알갱이 커피, 믹스커피 였더랬습니다. 그러다, 멋을 부려 본답시고 분쇄된 원두커피를 드리퍼로 내려 마시곤 했습니다. 촌으로 내려온 이래 볶은 원두커피를 수동 분쇄기로 갈다가 이젠 생두를 직접 볶기에 이르렀습니다. 점점 불편한 생활로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다 보니 커피 한번 마시자면 최소 반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전에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는 어느 재벌총수의 이야기를 따르던 삶이었는데 문득 그동안 참 서둘러 살았다는 생각도 드네요. 격세지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짜피 이리된 것인데 제2의 생은 천천히 가기로 합니다.

 

'레져 시커(The Leisure Seeker)', 치매에 걸린 은퇴한 문학 선생과 말기암 환자인 부인이 헤밍웨이의 집을 찾아가는 황혼여행을 그린 영화 입니다.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여행 중 들른 시골 식당에서 웨이트레스와 헤밍웨이 소설을 두고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알고보니 헤밍웨이로 논문까지 썼던 문학도 였던 겁니다. 자기 부인의 이름 조차 헛갈릴 정도의 치매가 왔지만 평생 자신이 바쳤던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자부심을 가진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부지불식 간에 2021년도 한달을 남겨 두었네요.


월요일, 11월 01, 2021

양평집 2021년 10월, 64년만의 가을 한파

 양평집 2021년 10월, 64년만의 가을 한파

아침 이면 이웃분께서 강아지 산책을 나서며 집앞을 지납니다. 인삿말이 바뀌었습니다.

"제법 추워 졌어요"

"그러네요. 시간이 참...."

악독하게 추워서 '악토버'라는 10월 입니다. 일기를 안내하는 방송에서 64년만의 가을 한파라고 하네요. 정확도가 의심되는 마당 온도계 수은주가 새벽에 무려 영하 4도 였다고 알려 줍니다. 맨발로 마당에 나갔다가 머리털 나고 처음 맞는 추위에 화들짝 놀라 집안으로 뛰쳐 들어왔습니다. 올 겨울도 지난해 만큼이나 추우려나 봅니다.

아침에 하얗게 서리가 앉았다가 가을 햇볕에 금방 녹고 가을 색을 보여 줍니다. 추위에 여름 꽃들은 다 시들어 버리고 가을 화단은 주로 국화류가 피었네요.

수분이 많은 다육이들은 미리 데크위로 올렸습니다. 데크를 둘러 쳤는데도 작년 겨울 추위에 얼어버리더군요. 겨울이 오기전에 작은 비닐 온실을 꾸며 주어야 겠습니다.

가을 한파에 동네 이웃들의 텃밭이 누렇게 변했더라구요. 추위에 배추의 겉잎이 얼었다 녹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마 일찍 심은 배추들의 웃자란 잎들의 피해가 큰가 봅니다. 우리집 텃밭은 그나마 덜한 편이네요. 속이라도 잘 들라고 묶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무우는 손목 굵기만 해졌습니다. 

텃밭 고랑 사이로 냉이들은 잘 자라고 있구요. 잡초는 징글징글 하면서도 신통하네요. 내년봄 냉이 된장국을 기대하며 적당히 남겨 두기로 합니다.

마당 고양이 녀석들도 급작스런 추위에 데크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군요. 더 추워지기 전에 집을 만들어 줄 참입니다. 빼꼼 열린 테라스 창틀 사이로 올라왔다가 한차례 다녀간 녀석의 발자욱이 귀엽습니다.

아침에 짙은 안개가 꼈다가도 낮에는 하늘이 청명해 지네요.

아침해와 저녁 노을

그리고 낙엽이 집니다. 무슨 가을 추억이라도 있는 양 괜시리 쎈치멘털 해지죠.

가을은 수확의 계절 이라는데 농사랄 것도 없는 귀촌인에겐 와 닫지 않습니다. 부지런한 분들은 온실에 이중 비닐을 쳐서 뭐라도 심는 재미가 있다는데 게으른 저는 오히려 날이 추워지면 텃밭에서 뜯어먹을 것도 없어 채소들은 마트에서 사먹습니다. 아침은 샐러드, 오트밀, '직접 구운' 빵에 치즈, 우유에 미숫가루 등으로 간단하게 저녁에는 와인도 한잔 곁들이죠.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과식이 없다는 것, 아무리 간단한 식사라도 칼과 포크로 썰어먹는다는 겁니다. 대충 손으로 집어먹기엔 창밖의 아침 풍경이 아깝잖아요.

점심에는 요리를 해먹는데 동영상 요리 채널이 다양해서 직접 해먹으니 메뉴가 점점 늘었습니다. 짬뽕, 스테이크는 기본입니다. 누가 보면 볼품 없는 솜씨일지 모르지만 메뉴가 다양해서 중식, 양식, 일식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사실 시중 음식점들도 정통 요리집이 몇이나 있겠어요? 

겨울에 접어들면 밤하늘 별이 더욱 반짝입니다. 날이 추워져서 공기중에 습기가 내려 앉으니 하늘이 맑아진 탓이죠. 다만 추위에 선뜻 마당에 나서기가 주춤 하긴 합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냥 "별 많네.." 그러면 오분 볼꺼리도 안됩니다. 하지만 별자리 몇개만 알아도 겨울 밤이 즐겁습니다. 요즘 휴대전화에 내장된 카메라가 워낙 성능이 좋다보니 별자리를 사진으로 담아냈다가 별자리를 그려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재작년 갤럭시 폰으로 찍은 오리온 자리 입니다. 휴대전화에 담은 사진을 꺼내서 인터넷의 별자리 표와 비교해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원본출처: https://www.ddanzi.com/index.php?mid=free&search_target=t_user_id&search_keyword=iih1123&document_srl=707249168

인터넷에서 마차부 자리 사진을 찾아 직접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서 신기해 하기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참고: "Small-Scope Winter", Sky and Telescope 12월호 22쪽

남들에게 취미라고 말할려면 뭐라도 좀 알아야 하겠지요. 시골 살면서 별보기는 제법 매력적인 취미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