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 "연구노트"를 작성하자.
메모 앱, 문서 작업 소프트웨어, 화면 캡춰 등 모든 일상이 디지털 화한 요즘 수기로 기록하는 일이 드믄것 같습니다. 쉽게 메모를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은 오히려 생각을 덜하게 되고 보관을 해두는 것으로 마치 내것 인양 여길 때도 있습니다.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고이 저장해 두고는 다시 꺼내보지도 않고 정작 필요할 때 또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남의 정보는 그렇다 쳐도 내가 겪은 일들은 기록해 두도록 합시다. 실험하면서 겪은 각종 사건들, 사소한 실수들,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 지나다가 발견한 물건들 등등, 하찮아 보이더라도 모든 것들을 기록해 둡니다. 나의 "연구 노트"는 내 인생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저의 "연구노트"에 대한 경험을 풀어봅니다. 재작년(2023년)에 반도체를 무료로 제작해주는 정부사업인 "내 칩 제작 서비스"를 접하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설계를 하려면 도구(소프트웨어)가 필요했는데 "반도체"가 들어가면 뭐든 큰 비용이 듭니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칩을 제작해 준다지만 반도체 설계 도구라는 장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오픈-소스" 운동이 활발해 설계 소프트웨어 역시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서 예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표준 셀 디자인 킷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몇번의 시행 착오를 격은 끝에 "실리콘 검증"을 마치고 상당히 안정된 디자인 킷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0여년 전에 만들었던 IP 검증용 FPGA 에뮬레이션 보드. USB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PCI 슬롯에 꼽는 방식이었다.
반도체 설계와 검증 도구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Magic 이라는 레이아웃 도구를 처음 접했던 30년전 쯤으로 기억됩니다. 서울대학교 반도체 공동연구소에서 MPW 칩 제작을 해준다기에 레이아웃 그리는 소프트웨어를 찾다가 인터넷(1990년대의 끝자락!)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버클리의 어느 FTP 사이트에서 소스를 받아 썬 워크스테이션에서 컴파일해서 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내인생의 첫 "내 칩"을 받아들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샘플 칩 제작의 추억[링크]
그후 하드웨어 언어(베릴로그와 VHDL)를 접하고 반도체 설계 방법론 탐구에 빠져 지냈습니다. HDL 시뮬레이터가 어찌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코뿔소 그림이 새겨진 VHDL 시뮬레이터를 지도교수님을 졸라서 연구실 프로젝트 비용을 떼서 구입 했는데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군요. 한 카피에 학생 할인 가격이 500만원으로 기억됩니다. 수십년이 지난 이야기 이지만 그때 몇가지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프린터 포트에 꼽는 락 드라이버)를 디스 어셈블 크랙해서 나눠 쓰곤 했습니다. 그 때 시뮬레이션과 에뮬레이션 검증에 미쳐서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열풍도 IMF 라는 국가부도의 위기도 몰랐으니까요. 실험실 귀신으로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날밤 새며 궁리했던 FPGA 에뮬레이션 검증 기법이 오늘의 "내 책상 위에 내 칩(MyChip-on-MyDesk)" 설계 방법론으로 되살아 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수십년이 지나 소위 "인생 2막"을 "반도체 설계"로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던 토대는 바로 그 시절에 작성해 뒀던 "연구노트" 입니다. 그때 정성스레 작성한 전자문서(HWP)는 저 먼 우주로 날아갔지만 손으로 작성해 뒀던 공책은 내 책상 위에서 건재합니다. 2001년에 작성했던 노트를 2023년에 꺼내 "내 책상위의 반도체 설계실"을 구축했으니 그때 손으로 작성했던 "연구노트"가 여간 소중하지 않군요. "연구노트"는 이공계 인생의 일기이자 비망록 입니다. "연구노트" 작성으로 앞으로 펼쳐갈 인생 자산을 풍부히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