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4년 9월 나는 운이 좋은 사람
작년부터 시작한 "반도체 설계 재밋게 가르치기". 반도체 설계도 취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일년동안 질문이 한건도 없다. 나만 재미있었나보다. 공짜 칩 만들어준다는 프로젝트가 앞으로 몇년간 더 갈 거라 하니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 몇년간 재미있을 예정이다. 해외 커뮤니티에 소개해 볼까보다. 그나마 "ETRI 반도체 실험실[링크] 뉴스레터"에 실렸다. 그렇게 재미보느라 달력에 뭔가 잔뜩 써놓긴 했다만 텃밭은 설렁설렁이다.
그래도 가지, 고추, 푸성귀는 알아서 잘 자란다. 시골로 이사온 후로 하루 두끼 먹기로 하고 실행하길 수년째다. 야채 샐러드는 빠지지 않고 있다. 밥 해먹기 귀찮을 땐 가지며 루꼴라 파스타를 해 먹으니 어쩌다 라면을 끓이면 이국적(!?) 맛이다. 도시 살때보다 육류 섭취가 훨씬 늘었지만 몸무게는 오히려 줄었다.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이 살이 쪽 빠졌다며 한마디씩 한다. 중년 넘어 배도 안나왔다고 하니 기분이 아주 좋다.
김장을 대비하여 배추며 무를 심었다. 매년 김장은 사서 먹겠다면서도 배추모종을 심는다. 배추 포기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시골사는 재미라 말하면서 말이다. 시골 살이가 어지간히 심심하여 나온 말일 것이다. 귀촌해서 한가로운 평안도 얻고 심심치 않은 일꺼리도 생긴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I'm Feeling Lucky!
폭염에 시기를 늦춰 9월초에 심은 배추, 무, 갓, 쪽파가 쑥쑥 자라는 반면, 토양살충제를 뿌리지 않고 심었던 고구마는 굼벵이가 다 갉아 먹어 한 개도 수확을 못했다.
겨울철 새 모이로 심은 땅콩도 시원찮긴 마찬가지. 말린다고 마당에 널어 놨더니 곤줄박이 녀석들이 연신 물어가는 중이다. 첫 수확했던 옥수수가 너무 맛있어서 두번째 모종을 사다심은 옥수수는 듬성듬성 이빠진 모양으로 성기지만 꿀맛.
두개 달린 배는 익어 가면서 새들의 부리를 견뎌낼지 모르겠다. 앞동네 논에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익어 가고 있는 가을이다.
현충원에 아버지 뵈러 갈 때 마당에 핀 꽃들을 꺽어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갔었다.
가을학기에 수강신청한 연필 소묘 수업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림 재능이 별로 없는지 개성있게 그린다는 말을 듣고있다.
하루종일 간식만 달라고 조르는 '꼬리'는 한달 내내 재채기와 헛구역질을 해서 병원을 두 번이나 가서 냉방병 처방을 받고 주사와 약을 먹었지만 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분이 넘도록 재채기를 하더니 거의 10센티미터에 가까운 풀 두개를 코로 뱉어냈다.
'꼬리와 꼬북이'를 위해 화장실과 스크래처, 숨숨집을 새로 마련해 줬더니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마당 냥이들에겐 로프를 사다가 스크래처를 만들어 줬으나 '꼬꼬'가 쓰던 것 내놓은 스크래처에 만 관심을 보인다. 추워지기 전에 겨울을 날 비닐 하우스를 사줘야겠다.
'꼬리와 꼬북이'는 아침 저녁 날씨가 선선해지자 기다렸다는 듯 침대위로 폴짝 올라와 잔다. 이제 부터 다리 뻗고 자긴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