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4년 11월, 대자연의 반격 "매운 맛 좀 볼래?"
지난달 누군가의 "도시로 돌아가는 열가지 이유"를 들으며 나는 끄떡 없다며 비웃어 줬더랬다. 그것을 본 것인지 대자연께서 매운 맛을 보여 주셨다. 백십년 만의 폭설이래나 뭐래나. 무려 하룻밤 사이에 삼십 센티미터나 되는 눈을 내려 주셨던 것이었다.
사실 재작년 늦 여름에는 보름간 비가 내렸었다. 그때도 방송의 기상 캐스터는 백년만의 강우량 이라며 호들갑이었다. 여기저기 홍수 피해를 보도했지만 다행히 우리집은 지대가 다소 높았던 탓에 아무일 없었다. 연일 높은 습도에 에어콘을 종일 켜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왔을 뿐이었다.
작년 연말에도 꽤나 많은 눈이 내려 집앞 내리막 길이 막혀 버렸지만 설경을 즐기며 어묵탕에 막걸리를 마시는 여유를 부리며 새해를 맞았었다. 그런데 올해, 본격적으로 겨울을 시작하기도 전에 큰눈이 내렸다. 대설 경보가 연달아 울렸지만 이까짓 눈좀 내린다고 호들갑을 떠나 싶었다.
첫눈이 소복히 내린다며 눈구경. 이때만 해도 정전을 걱정하진 않았다. 오랜만에 벽난로를 땠다. 미리 장작을 준비하지 못해서 장식으로 만든 소품(?)을 땠다. 이러다 벽채 뜯어 때야 하는거 아니냐며 걱정반 농담반.
다소 서늘한 기운에 아침 일찍 잠이 깨서 보니 사방이 너무나 깜깜 했다. 보통 때라면 집안의 여기저기 전자기기의 대기전원을 보여주는 엘이디들의 반짝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새 보일러가 꺼져있어 방바닥이 냉골이다. 정전! 내린 눈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한전에 신고를 하니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서 습기를 많이 머급은 습설이 내려 길가의 높은 나무들의 가지가 전력선을 덮쳐 단전이 되었단다.
곧 복구 되겠거니 하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웬걸! 양평군 전역에 수십군데 지역에 정전사태라고 했다. 김장을 담궈 쟁여 놓은지 일주일도 안된 김치냉장고가 걱정이다. 하루 반나절이 지나서야 전기가 들어왔다. 얼지 않은 비탈의 키큰 나무가 쓰러지고 가을 끝이라 덜 진 나뭇잎에 습설이 쌓이니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져 길을 막아 제설이 어려워 전기복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다행히 화목 벽난로가 있어 집안을 데울 수 있었고 사다놓은 생수가 있어 몇일은 문제 없었다. 전기 인덕션 조리기구 대신 '국민 연료' 부탄 가스가 있으니 밥짓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겨울이면 평소에도 세수를 잘 안하니 괜찮았지만 화장실 변기가 문제다. 쌓인 눈을 퍼다가 난로 앞에 두고 녹여서 용변을 봤다. 큰눈을 예상하여 미리 준비해 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그럭저럭 견뎠다. 이런저런 행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아 팽개쳐 두었던 충전 배터리를 찾아 급한대로 휴대전화는 충전할 수 있었다. 이동전화 중계기들이 전력관리에 들어 간 탓인지 방안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아 다소 불편했다. 평소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으니 괜시리 궁금해지는 것은 왜일까. 하룻밤 정도는 촛불을 켜고 지낼만 했다. 모처럼 운치있고 좋았다. 다만 소리가 없는 고요 적막함은 심심하기까지 했다.
즐겨보는 교육방송 EBS의 '건축탐구, 집'의 임형남 건축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호기롭게 시작한 전원생활을 포기하는 이유"
역시 무료함은 시골 생활의 가장 큰 적이다. 자연 환경을 우습게 보다가는 도시로 돌아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대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올해는 김장 무와 배추가 제법 튼실하다. 대자연은 가끔 맵기는 해도 풍요로움을 잊지 않는다. 가을 걷이를 끝낸 밭에 내년 봄을 기약하며 마늘, 양파, 상추등을 심고 작은 비닐 온실을 만들었다.
꼬리와 꼬북이는 날씨가 추워지자 침대와 소파에 올라와 자기 시작했다. 풀숲이며 산속이며 여기저기 쏘다니는 꼬북이의 발바닥은 말랑 젤리는 없어지고 굳은살에 쩍쩍 갈라져 있다. 이런 꼬북이가 이틀이나 꼼짝도 안하고 누워만 있어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애잔한 뒷다리'의 뼈가 부러졌단다. 진통제를 맞고 움직이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다.
기온이 내려가 마당 수도꼭지에 고드름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당 냥이들 추울까봐 데크에 크고 넓은 온실을 설치했다. 작년 비닐하우스에 비하면 호텔 수준이다.
올 해 구입해서 심은 초화류의 절반 이상은 장마에 녹아 없어졌지만 내년 봄소식을 알려줄 원종튤립, 수선화, 무스카리, 설강화, 크로커스 등 구근과 이토작약, 헬레보루스, 미국 아이리스를 심었다. 추위에 약한 남천, 배롱나무, 수국은 물론 1년차 장미들도 왕겨와 나뭇잎으로 1차 월동을 하고 잠복소로 2차 월동을 해줬다.
가을의 끝자락에 용담과 국화류가 서리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피어있다.
감기며, 김장이며 이런저런 이유로 결석이 잦았던 연필 소묘는 종강 작품전도 하고 서서히 수업도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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