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1년 11월, 첫눈! 그리고 김장
지난달 느닷없는 한파에 움찔 했는데 이달 입동은 웬걸 34년만의 따뜻한 입동 이랍니다. 그러다 다시 몇일만에 한파가 닥쳐서 마당에 내놓은 개수대 꼭지에 작은 고드름이 매달리더니 첫눈이 내렸습니다. 마당 고양이는 개도 아닌 것이 뭐가 내린다고 마당을 서성이네요. 아마 태어나서 맞는 첫눈이라 신기했었나 봅니다.
한파를 맞은 배추가 더이상 자랄것 같지 않은지 예년보다 한두 주 빠르게 이웃의 한두집 씩 김장을 담그고 있습니다. 우리집 텃밭은 8월 말에 배추 모종을 심었기에 조금 기다려 봤지만 더이상 미룰 수가 없겠더군요. 무우를 뽑아 봤는데 작년보다 알이 작았습니다.
배추도 속이 덜 찼지만 그래도 김장을 담궈 봤습니다. 한 열주 정도 심었던 고추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마당에서 말리고 방앗간에서 빻아왔더니 고춧가루가 1.2킬로그램이나 나왔다네요. 김장 담그기 충분 한 양입니다. 김장김치를 담그니 한 20키로그램은 되나 봅니다. 깍두기랑 하면 그럭저럭 겨울은 날 것 같네요. 배추속이 션찮더라도 할건 해야 겠지요. 김치 속에 돼지 수육을 싸먹어야 김장 좀 했네... 하는것 아니겠어요.
배추 속이 샛노란 것이 먹음직 합니다. 황금배추 품종이라 더 노랗다고 합니다. 모종 값도 일반 배추보다 조금 비쌌던 걸로 기억 합니다. 배추전에 배춧국을 더해 간단히 소주 일잔 했습니다.
첫눈 이라고 조금 쌓이더니 이내 녹아 버리고 살짝 따뜻한 틈을 타 봄꽃이 주책없이 나왔습니다. 명자나무 꽃.
제비꽃과 괭이밥
민들레와 개망초
촌 사람이 계절을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겁니다. 아침일찍 마당을 나설 때 들이 마시는 쌀쌀한 공기의 청량함, 오후 해가 어느 산봉우리로 떨어지는지 가늠해보고 밤하늘 별자리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앎니다.
이웃에서 나눠주시는 과수에서도, 산책 길에서 밟는 낙엽에서도..... 늘 다니던 산책길 이지만 초겨울을 맞는 풍경이 문득 새롭게 다가옵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게 아마 고교시절일 테니까 벌써 40년은 된 것 같네요. 맥스웰 하우스 가루커피에 이어서 맥심 알갱이 커피, 믹스커피 였더랬습니다. 그러다, 멋을 부려 본답시고 분쇄된 원두커피를 드리퍼로 내려 마시곤 했습니다. 촌으로 내려온 이래 볶은 원두커피를 수동 분쇄기로 갈다가 이젠 생두를 직접 볶기에 이르렀습니다. 점점 불편한 생활로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다 보니 커피 한번 마시자면 최소 반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전에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는 어느 재벌총수의 이야기를 따르던 삶이었는데 문득 그동안 참 서둘러 살았다는 생각도 드네요. 격세지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짜피 이리된 것인데 제2의 생은 천천히 가기로 합니다.
'레져 시커(The Leisure Seeker)', 치매에 걸린 은퇴한 문학 선생과 말기암 환자인 부인이 헤밍웨이의 집을 찾아가는 황혼여행을 그린 영화 입니다.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여행 중 들른 시골 식당에서 웨이트레스와 헤밍웨이 소설을 두고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알고보니 헤밍웨이로 논문까지 썼던 문학도 였던 겁니다. 자기 부인의 이름 조차 헛갈릴 정도의 치매가 왔지만 평생 자신이 바쳤던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자부심을 가진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부지불식 간에 2021년도 한달을 남겨 두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