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집 2021년 2월, 시골의 문화생활: 방구석 영화관
월초로 이어지던 혹독한 겨울 추위가 가고 월말에는 낮기온이 연일 10도를 웃돕니다. 설 연휴 즈음에는 마당의 온도계가 무려 26도를 가리켰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긴 합니다 만 제법 봄 기운이 느껴집니다. 산수유에는 꽃눈이 맺혔구요, 몇가지 새소리도 들려 옵니다. 재작년 일지를 보니 3월 중순에도 한차례 눈이 내렸더군요.
쌓였던 눈이 가시고 얼음도 다 녹으니 마당 여기저기 낙엽들과 덤불들이 볼썽 사납게 드러납니다. 새봄에 마당을 어떻게 꾸밀까 궁리해 봅니다. 유튜브를 보며 다른 귀촌인들은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지 찾아보기도 하구요. 넓디 넓은 땅에 꾸민 숲같은 정원을 보며 부러워 하다가도 저넓은 땅을 가꾸려면 어지간히 부지런 해야 겠다며 '나는 못하네' 합니다. 작은 마당에 아기자기한 꽃밭도 있습니다. 작약이며 각종 구근류들은 우리도 있다며 맞장구 쳐보구요. 역시 마당 꾸미기는 부지런함과 세월에 당할 수 없겠더군요. 이렇게 저렇게 꾸며볼 생각에 새봄이 기다려 집니다.
시골로 이사오면서 인터넷을 연결 했습니다. 무려 광 케이블로 초고속 인터넷 망이 시골까지 들어 왔네요. 귀촌 하며서 소일꺼리 몇가지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소싯적 손놨던 공부하기 입니다. 요즘 인터넷상에 올려져 있는 다양한 학습 컨텐츠가 많습니다. 그중 영문 소설 읽기와 수학과 물리학 입니다. 한때 공부좀 했노라며 까짓거 욕심을 내서 시작하긴 했지만 금방 찾아놨던 단어가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에다 문장 구조가 금방 이해되지 않습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방화'를 강독한 유튜브 컨텐츠가 있길래 따라 가고 있습니다. 스무쪽 이내의 짧은 영문 소설인데 무려 두달째 읽는 중이네요. 그냥 강의를 보기만 하기보다 필사하고 공부한 것을 블로그에 남겨 놓으려니 여간 더딘게 아니군요. 게다가 영어공부 한다고 방송대 영문학과에 편입했는데 3학년만 몇년째 입니다. 학기초에 다짐을 하다가도 번번히 진도를 놓쳐서 재등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꼭 이수해서 내년에 4학년에 진급하고 졸업도 하리라 굳게 다짐해 봅니다.
다른 공부과제로 양자역학과 전자기학의 기초 다지기 입니다. 미적분과 선형대수학이 필수 요건입니다. 하루에 한 문제 씩이라도 풀기로 했지만 이 역시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 입니다. 분명히 배웠던 기억은 있는데 볼때마다 새로우니 화딱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강의를 들을 땐 얼마든지 이해 갔던 것들도 혼자 복습하려면 턱턱 막히는 통에 진도가 지지부진 입니다. 오십대 말이면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두뇌가 망가진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드네요. 나도 한때는 천재 아닐까 하는 자뻑(?)도 했기에 추억을 되살린 답시고 천재들의 전기영화를 봤습니다. 나도 소싯적에는 저렇게 빠릿했었노라며 말도 안되는 위안을 해봅니다.
그러다 틈틈이 말랑말랑한 연애 영화도 보구요. 샌드라 볼락이 저렇게 이뻣나? 나이들어 가며 미인의 기준이 달라지나 봅니다. 노부부의 다큐영화를 보며 눈물을 찔끔 거리기도 합니다. 영화관이라면 애써 무덤덤한척 했겠지만 방구석에서 티슈 통 옆에 끼고는 대놓고 눈물을 훔칩니다.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데 그때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장면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멋진 대사에 감동 하기도 하구요. 집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관의 감흥이 없다고는 하지만 긴장을 풀어놓고 보니 장면과 대사가 훨씬 잘 들어옵니다. 물론 액션 영화라면 극장의 느낌이 다를 테지요. 이야기 중심의 영화를 찾는 이유도 나이탓인가봐요.
이런저런 동영상 강의며 (그중 유료도 있음) 영화를 한 십여편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골로 오기전에는 영화관에 몇번이나 갔었을까요? 독서는? 시골에서는 문화생활이 어렵다 하지만 그것도 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물론 세련된 분위기는 비할 바 없고 교류할 상대를 찾을 수 없긴 합니다. 코로나-19 시절이라 이래저래 방구석 문화생활은 도시나 시골이나 다를바 없을 겁니다. 귀촌한 덕분에 영화와 음악감상, 독서, 요리 따위를 별수없이 하게 됐습니다만 모르긴 해도 코로나가 지나면 새로운 방구석 문화가 사회전반에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